WTO 전직위원 13명 항의 성명서…본지 단독 입수
美 연임 반대 왜?
한국산 세탁기 반덤핑 2심 앞두고 상소기구에 '협박'
[ 오형주 기자 ] 미국이 장승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의 연임을 반대한 데 대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WTO 상소기구 현직 위원들에 이어 전직 위원 13명이 성명서를 내고 미국의 행동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경제신문은 제임스 바쿠스 전 WTO 상소기구위원장 등 상소기구 전직 위원 13명이 1일 WTO 분쟁해결기구(DSB) 의장에게 보낸 성명서를 단독 입수했다. 성명에는 1995년 WTO 출범 이후 상소기구 위원을 지낸 18명 중 생존해 있는 13명 전원이 참여했다. 바쿠스 전 위원장 등 미국 출신 위원 3명도 포함됐다.
WTO의 통상분쟁 해결 절차는 2심제로 소위원회(패널) 조정이 1심, 상소기구 조정이 2심이다.
7명으로 구성된 WTO 상소기구 위원은 국가 간 무역분쟁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대법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장 위원은 201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WTO 상소기구 위원으로 선출됐다.
전직 위원들은 성명서에서 “지난 20여년간 상소기구 위원의 공정성과 독립성은 WTO 분쟁해결체제의 성공에 핵심적 요인이었다”며 “(미국의 행위는) 건너선 안 되는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과 같으며, 머지않아 WTO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美의 장승화 연임 반대는 보호무역주의 본색 드러낸 것"
한국인 최초로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무역분쟁 조정 최상위 기관)에 진출한 장승화 위원(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연임을 미국이 반대하고 나선 데 대해 WTO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오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돌출행동’은 올해 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이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돌아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덤핑 관세 방어 위해 연임 반대
미국이 장 위원의 연임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분쟁에서 패소해 WTO 상소 절차에 들어간 점을 주목한다. 미국은 지난 4월19일 WTO 분쟁해결기구(DSB) 소위원회(패널) 판정에 불복해 상소했다. 앞서 패널은 미국이 2013년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한국산 세탁기에 9~13%에 달하는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WTO 협정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한국산 세탁기 사건은 미국의 제로잉과 표적덤핑을 결합한 반덤핑 관세제도가 WTO 상소기구에서 다뤄지는 첫 사례다. 제로잉은 수출가격이 내수가격보다 낮은 경우 반덤핑을 적용하는 방식이 ? 또 표적덤핑은 특정 구매자, 시기, 지역에 집중적으로 덤핑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세탁기 분쟁은 미국의 제로잉 관행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어 파급력이 크다”며 “만약 상소기구가 한국의 손을 들어주면 이후 판결에 기준이 되는 만큼 미국 산업계가 절박하게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유지하고 있는 제로잉 방식의 반덤핑 관세부과 제도가 WTO의 제지로 존폐 위기에 처하자 장 위원 연임 반대라는 극단적인 행동에 돌입했다는 게 통상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올 연말로 다가온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인정을 둘러싼 분쟁에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도 있다.
WTO 위원들 반발
상소기구 위원은 모두 7명이며 임기 4년에 한 번 연임할 수 있다. 연임하려면 모든 WTO 분쟁해결기구 회원국 동의가 필요해 미국이 반대하면 장 위원 연임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연임 반대에 WTO 전·현직 위원들이 일제히 나서 항의성명을 내고 있다. “(미국의 행위는) WTO의 자유무역체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는 게 이들 위원의 주장이다. 이들은 또 “상소기구 위원 중 한 명이 특정 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만으로 WTO 회원국으로부터 배척을 받는다면 그 논리는 다른 상소기구 위원 6명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라며 “상소기구의 판결과 권고는 위원 개인이 아니라 상소기구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란 점을 간과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연임 반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차원에서 심사숙고한 결정이었는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 求? 미국 통상학계에서는 대체로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독단적인 돌출행동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전직 고위외교관료는 “만약 미국 정부 내에서 조율된 결정이 아니라면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강력하게 부당함을 어필해 철회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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