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상장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최근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 개정안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상법 등 현행법과 충돌하는 규정이 27건 이상 포함됐다고 한다. 황당한 규정에는 ‘이사회를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목도 포함된다. 미국 것을 베껴도 적당히 베껴야 할 것이다. ‘이사의 임기는 존중돼야 한다’는 규정은 하나마나한 소리다. 상법상 이사 선임과 해임은 주주총회 고유권한이다. ‘이사회는 공정하게 평가돼야 하고 평가결과는 공시돼야 한다’는 규정은 상법상 조직 외에 이사회를 평가하는 막강한 임의조직을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밖에 ‘지배주주가 다른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거나 ‘미등기 임원까지 개별 보수를 공시해야 한다’ 등의 규정도 역시 상법상 근거가 없고 현실과 거리가 멀다.
전경련 등은 이 개정안이 행정법상 ‘법률우위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며 전면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법을 잘 지킨 상장사들이 오히려 지배구조 수준이 낮은 기업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1999년 제정된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연성규준이다. 그러나 상장사엔 무시할 수 없는 규제로 작용해왔다. 기업지배구조원이 매년 이 규준을 기준으로 상장사 지배구조를 평가해 등급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현행 상법을 어기면서까지 ‘이랬으면 좋겠다’ 식의 개정안을 내놓으니 상장사들은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기업지배구조는 외환위기 직후 외국 기관 등의 요구에 떠밀려 도입된 아젠다였다. 오히려 헤지펀드 등이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삼았다가 ‘먹튀’했던 기억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아졌다. 그 사이 우리 상장사들은 이미 국제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더구나 세계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한 기업의 자율적 선택을 강조하는 추세다. 이런 현실에서 현행법에 상충하는 규정을 넣으면서까지 모범규준이라고 버젓이 내놓는 기관은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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