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수출 강국의 필요조건
일본의 1/2 수준 기술무역…최근 연 50억弗 이상 적자
국제 분업구조·중국의 수요 등 기술수출 여건 개선
후발국 추격 우려한 기술이전 규제부터 정비해야
"중국에 팔 수 있는 기술은 적극적으로 파는 게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기술협력에도 유리할 것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정부가 수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차세대 수출 유망 품목들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품목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초고속 반도체메모리 저장장치(SSD), 화장품 말고도 신약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총 6조원대 규모의 신약기술 수출계약(라이선싱 아웃 계약)이 한몫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심지어 정부는 이번 신약기술 수출을 창조경제 모범사례로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한미약품이 사노피아벤티스에 5조원대라는 국내 제약업계 사상 최대 기술수출 기록을 세운 데 이어, 또다시 1조원대에 이르는 신약기술을 얀센에 수출했으니 정부가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를 현 정부의 공인 양 하는 건 좀 낯뜨거운 일이다. 일차적으로는 기업이 오랜기간 기울인 각고의 노력 덕분이고, 굳이 정부의 공을 따진다고 해도 10여년 전 내놓은 신약육성 정책 정도일 것이다. 그만큼 신약은 인내의 시간이 지나가야 성과가 나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만 이를 참지 못하고 이후 정책이 오락가락했으니 오히려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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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무역은 기술 및 기술서비스와 관련해 국제적·상업적으로 비용의 지출 및 수입이 있는 거래를 총칭한다. 특허 판매 및 라이선싱, 발명, 노하우의 전수, 기술지도 연구, 엔지니어링 컨설팅, 연구개발 서비스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수출 강국을 자랑하는 한국은 어느 위치에 있는 걸까.
한국은 2013년 기술수출 68억4600만달러, 기술수입 120억3800만달러로 기술무역 규모는 188억8400만달러를 기록했다. 기술무역수지는 51억9200만달러 적자로, 기술무역수지비(수출/수입)는 1에 한참 못 미치는 0.57로 각각 나타났다.
같은 해 주요 선진국의 기술수출을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18배, 독일은 10배, 영국은 6배, 일본은 5배에 달한다. 기술무역수지비는 미국 1.44, 독일 1.23, 영국 3.06, 일본 5.88 등 모두 기술무역 흑자국들이다. 기술무역 규모를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11배, 독일은 6배, 영국은 3배, 일본은 2배에 이른다. 기술무역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개척할 여지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자 쌓이는 기술무역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은 그동안 기술무역수지를 연구개발투자의 생산성 지표쯤으로 해석해 왔다. 즉 기술무역수지가 적자면 연구개발투자가 그만큼 비생산적인 탓으로 돌리는 식이다. 그러나 기술무역을 연구개발투자와 바로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기술무역은 모기업과 해외 자회사 간 거래도 포함한다. 기업의 글로벌화와도 관련 있다는 얘기다. 또 신약처럼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기술수출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음으로 기술이 실제 수출로 이어지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제도적, 문화적 장애물도 많다. 예컨대 기술보호주의적 인식이나 기술수출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 등이 그렇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기술수출을 연구개발투자만의 함수로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기술수출을 수출의 적극적인 한 형태로 보고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수출도 늘리고, 그 결과 연구개발투자가 다시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할 때 한국은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기술수출을 늘릴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국제 분업구조의 변화:과거의 국제 분업이 한국 제조업에 유리한 구조였다면, 최근의 국제 분업은 신약 등 제약업에 유리한 구조다. 직접 임상을 거치고, 상업화하지 않아도 중간 단계에서 기술수출 형태로 가면 선진국 기업과 얼마든지 분업이 가능하다. 최근 보건의료, 생명과학의 비약적인 기술수출 증가율이 이를 말해준다.
△제조업의 진화:한국 제조업도 제조를 넘어 다양한 수익 원천을 찾는 쪽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전기전자, 기계 등은 기술 도입도 많지만 최근 기술 수출이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에 유리한 기술수출 여건
△중국의 기술 수요:중국은 한국의 최대 기술수출 대상국이다. 전체 기술수출의 50%를 차지한다. 한국이 중국 시장의 내수화 전략으로 가면 대(對)중국 기술수출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활발한 인수합병:최근 인수합병 등 외국인 투자 유입이 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기술수출 가능성을 높인다. 기업가치 평가는 기술가치 평가를 동반하면서 기술수출 또한 촉발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살리려면 우리 내부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먼저 기술수출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개발투자가 기본이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연구개발예산 증액에 부정적이고, 민간 연구개발투자 세제 지원까지 축소했다. 기술수출을 외국에 기술을 팔아넘기는 행위로 여기는 행태도 걷어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기술추격에 대한 지나친 경계감도 기술수출에는 부정적이다. 차라리 중국에 팔 수 있는 기술은 적극적으로 파는 게 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기술 협력에도 유리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등이 기술거래 주체를 국내로 한정하는 것 역시 걸림돌이다. 기술거래를 해외로 확대하면 그게 곧 기술수출이고, 기술가치 또한 훨씬 높아진다.
임상, 인허가 규제도 정비해야
마지막으로는 규제 정비다. 기술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크게 두 종류다. 우선 분야별 규제다. 예컨대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생명윤리법, 임상이나 인허가 관련 규제가 그렇다. 또 하나는 아예 해외 기술이전을 규제하는 법규들이다.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이 지나친 嬖?분위기를 조성해 합법적 기술수출까지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참여 기업 외의 자와 기술실시 계약을 하려고 할 때는 기술실시 능력이 있는 국내 중소기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는 국가연구개발사업 규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기술수출로 한국 수출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려면 이런 장애물부터 정비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 제조업 업그레이드,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란 측면에서도 기술수출에 대한 새로운 전략이 절실하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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