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지뢰 사고로 두 다리 잃었지만…37년 복무 이종명 대령 전역식
동료 9명 대표한 전역사
모든 일터가 전쟁터 될 수 있어
언제든지 가장 먼저 달려올 것
부인 김근란 여사 답사
남편 군화 끈 대신 매준 15년
앞으로도 당신의 다리 되겠다
[ 최승욱 기자 ] “국민 전체가 항재전장(恒在戰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병들이 근무하는 전후방 부대는 물론 국민의 일터 등 모든 환경이 언제든지 전쟁터가 될 수 있습니다.”
2000년 6월27일 경기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위험에 처한 전우를 구하려다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은 이종명 대령(56·육사 39기·사진)은 24일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이 주재한 전역식에 참석한 뒤 이같이 말했다.
15년 전 사고는 당시 1사단 수색대대장이던 이 대령이 후임 대대장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마지막날 발생했다. 수색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후임 대대장과 중대장이 지뢰를 밟고 쓰러졌다. 지뢰가 많이 매설된 이 지역을 잘 알았던 그는 “위험하니 들어오지 마라, 내가 가겠다”며 현장에 들어갔다. 斫肉?신음하는 후임대장을 업으려고 쪼그려 앉는 순간 발아래에서 지뢰가 터졌다. 그는 후배들이 본받을 만한 영웅으로 인정받아 2002년 육군 참군인 대상(책임 분야)을 받았다. 그의 군인 정신이 회자되면서 하반신을 못 쓰는 현역 군인이 계속 군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다.
이 대령은 “1983년 소위로 임관한 뒤 37년간 대한민국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지 않았나 싶다”며 “2년6개월간 치료받고 군에 복귀한 뒤 연령정년(56세)까지 복무하면서 군 역사에 새로운 출발점을 찍은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그는 육군대학과 합동군사대학에서 작전분야 교관을 지내면서 각종 강연을 통해 북한의 호전성과 엄중한 안보현실을 알려왔다. 이날 함께 전역하는 대령 아홉 명을 대표해 읽은 전역사에서 그는“아직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의 세력과 싸우는 이 나라의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달려오는 예비전력으로 거듭나기를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 대령에 이어 부인 김금란 여사가 가족 답사자로 연단에 섰다. 그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른 사람처럼 ‘37년 군생활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전역한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는 전할 수 없지만 원치 않은 사고로 군생활 절반을 불편한 몸으로 고통과 아픔을 모두 이겨내고 누구에게나 떳떳하고 당당하게 전역하게 돼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여사는 “15년 동안 군복을 입혀주고 비상시 군화 끈 매준다고 땀 뻘뻘 흘릴 일은 없어 시원섭섭하다”며 “원하는 대로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당신의 다리가 돼서 도와주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령은 위국헌신의 공로를 인정받아 10월1일 계룡대에서 열리는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이 대령은 앞으로 안보강사와 사회복지사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계획이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후배 장병을 위해 군 경험을 전수하는 일을 최우선시하면서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겠다”고 밝혔다.
37년간 국가와 군을 위해 헌신한 부친의 길을 차남이 이어서 걷고 있다. 2012년 임관한 이승기 대위(ROTC 50기·진급 예정자)는 합동군사대에서 독일어반 교육생으로 복무 중이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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