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 세부/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코피노가 무슨 문제가 되나요? 필리핀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일 뿐인데….”
필리핀 관광지 세부에서 만난 한 현지인 가이드는 ‘코피노가 필리핀의 사회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같이 말했다. 코피노는 한국인(코리안) 아버지와 필리핀인(필리피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다.
지난해 6월 한 코피노가 한국 법원에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해 처음 승소한 뒤 한국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최근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지원단체가 코피노 친부로 추정되는 한국 남성들의 사진을 본인 동의 없이 인터넷에 올리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사업이나 유학차 필리핀에 왔다가 현지 여성을 만나 아이를 가진 뒤 연락을 끊고 귀국한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코피노는 주로 ‘한국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단어로 쓰이고 있다.
필리핀의 현지 반응은 달랐다. ‘버려진 불쌍한 아이들’이라는 인격비하적인 표현으로 전락한 코피노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 대다수 한인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한 동포는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해 자녀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많다”며 “이들 자녀도 혼혈이라는 측면에선 모두 코피노”라고 말했다.
필리핀 한인 사회에서는 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을 코피노 대신 코필(Kor-Fil)로 부르자는 캠페인을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모계사회인데다 다문화에 익숙한 필리핀에선 한국과 달리 ‘싱글맘이 키우는 혼혈아’라는 이유로 멸시받거나 차별받지 않는다는 게 현지 동포들의 얘기다. 코피노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칫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다.
물론 버려진 코피노들에 대한 지원은 시급하다. 한국보다 앞서 필리핀에 진출한 일본은 자피노(일본인 남성과 필리핀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차원에서 자피노를 위한 현지 학교를 세우고 국적 취득을 간소화하는 정책 등을 잇달아 내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