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위험 커지자 채권 매입 연장 시사
금리는 또 동결…유로존 성장률 전망치 낮춰
[ 임근호 기자 ]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사진)가 추가 양적 완화(QE) 가능성을 시사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진 탓이다. 드라기 총재는 3일 기준금리를 0.05%로 동결한 뒤 연 기자회견에서 “다음달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물가상승률은 0.2%에 불과했다.
디플레이션 위험에 추가 QE 시사
ECB는 이날 유로존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성장률은 연 1.5%에서 1.4%, 내년 성장률은 1.9%에서 1.7%로 낮춰잡았다. 인플레이션율은 올해 연 0.3%에서 0.1%로, 내년 전망치는 1.5%에서 1.1%로 수정했다. 드라기 총재는 “새 전망치는 중국발 금융시장 요동이 발생하기 전인 8월12일 도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망치보다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ECB는 당장 다음달부터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드라기 총재는 “유가 하락이 주범”이라면서도 “세계 성장률 둔화에 따라 디플레이션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ECB의 자산매입 계획은 유연하다”며 “매입 규모와 자산 구성, 프로그램 지속 기간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ECB는 지난 3월부터 매월 600억유로 규모의 채권을 사들이는 QE를 시행 중이다.
필요하다면 내년 9월까지 시행 예정인 QE를 연장하고, 규모를 늘려 추가 QE를 시행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필요하다면’이라는 전제를 강조하며 “맡겨진 책무 안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CB는 이와 함께 ECB가 매입할 수 있는 단일 종목 채권 한도를 전체 자산의 25%에서 33%로 늘렸다. 그만큼 더 많이 우량채권을 매입할 수 있어 추가 QE의 준비과정으로 풀이된다.
제임스 에시 에버딘자산운용 애널리스트는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2012년 유로존 위기 때 ‘유로존 붕괴를 막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한 것과도 맞먹는 강도 높은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홀거 슈미딩 베렌베르그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아직 QE를 확대하지 않았지만 시장에 영향을 주는 명백한 구두 개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기 총재 발언 직후 유로화 가치는 즉각 1% 넘게 떨어졌다. 경기부양 기대감에 독일 DAX지수가 전날보다 2.68% 오르는 등 유럽 증시는 모두 1~2%대 상승 마감했다.
그리스 긴급유동성지원 한도 낮춰
드라기 총재는 중국 경제 악화와 관련해선 “ECB는 지난달 중국 위안화 가치 평가절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이번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및 재무장관 회의 때 더 많은 세부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울러 ECB는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897억유로에서 891억유로로 낮췄다.
드라기 총재는 “(하향에 따른 그리스의 위험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그리스 채권 매입 여부에 관련해선 지급능력 등 3차 구제금융에 관한 첫 번째 검토가 끝나고 나서 생각해볼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날은 드라기 총재의 생일이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생일 축하’ 메시지와 함께 드라기 총재의 기자회견이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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