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
[ 김유미 기자 ] 눈동자로 결제하는 세상이 올까. 카드는 꺼낼 필요 없다. 단말기 앞에서 눈을 잠시 뜨고 있으면 된다. 홍채 무늬를 통해 결제자를 인식한다. 서명이나 인감 대신 ‘몸의 정보’로 본인을 인증하는 생체인식(바이오인증) 기술 중 하나다.
최근 이에 대한 기사가 떴는데 댓글 분위기가 심각했다. 전혀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잔혹한 범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예컨대 도둑들이 남의 카드나 통장 대신 안구를 훔쳐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필립 K 딕 원작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때문일 것이다. 2054년 미국 워싱턴의 특수경찰 존 앤더튼(톰 크루즈)이 타인의 안구 활용을 시도한다. 조직 안에 잠입하려면 홍채 인식을 통과해야 해서다. 그는 적출된 내부인의 안구를 입수한다.
이게 가능하다면 정말 문제다. 지문 인식을 위해 손가락 피부를 뺏기는 세상보다 훨씬 잔혹하다(굳이 타인의 손가락 활용법이 궁금하다면 영화 ‘가타카’(1997)가 있다).
다행히 적출된 안구로는 홍채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은 “사후엔 동공이 확대되면서 그 주변의 홍채 조직이 변화를 겪는다”며 “적출된 안구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기절시키거나 협박한 뒤 홍채 인식을 하면 어떨까. 보안솔루션업체 이리언스의 황정훈 영업본부장은 “기절하면 동공이 확대되고 극심한 불안 속에선 눈동자가 크게 떨린다”고 했다. 이 역시 어렵다는 설명이다. 홍채 인식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므로 오히려 안전하다고도 덧붙였다.
물론 사람들의 걱정은 ‘안구 훼손’에 머물러 있지 않다. 국가나 기업이 모든 이의 생체정보를 활용하는 세상. 감시와 통제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리게 된다.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 보면 바이오인증은 유리한 점이 많다. 지난해 감사원에 따르면 32만명의 사망자에게 3년간 639억원이 복지 급여로 나갔다. 공무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받기 위해 퇴근 카드를 악용하는 사례도 뉴스를 타곤 했다. 바이오인증을 하게 하면 본인인지 확인해 부정 수급을 막을 수 있다. 이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국 등에선 복지 보조금의 이중 인출을 막기 위해 바이오인증을 도입한 사례가 있다.
거부감을 완전히 극복하려면 개인의 효용이 더 부각돼야 한다. 예컨대 해킹과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를 막을 수 있다면? 지난 30일 한국은행·금융결제원이 한은에서 주최한 ‘바이오인증 활성화 전략 세미나’에선 목소리 인증 방식이 소개됐다. 이 시스템에선 본인 목소리가 아니면 폰뱅킹을 할 수 없다. 최후의 거부감까지 없애기 위해 업체들은 고심한다. 홍채 인식은 눈을 스캐너에 바짝 대지 않아도 되도록 인식 기능을 향상시켰다. 최근 각광받는 것은 지정맥(指靜脈) 인식이다. 손가락 속의 정맥에 적외선을 쪼이면 정맥이 검게 나오는데 이를 인식하는 기술이다. 손바닥 정맥 인식법도 가능하다. 스캐너에 피부를 접촉하지 않아도 돼 위생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얼굴이나 귀 모양부터 심지어는 체취나 타자 습관까지 생체 인식의 대상에 포함된다.
이미 사용 중인 생체정보도 있다. 지문이다. 행정문서를 자동 발급받을 때나 공항 출국 심사 때 사람들은 손가락을 스캐너에 댄다. 한때는 지문 수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매우 컸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CCTV 확대나 일부 대학의 전자학생증 도입 당시에도 그랬다.
기술 발전에 따른 거부감은 편리함 속에 천천히 잊혀지는 모양이다. 망각해선 안 될 것들도 있다. 수많은 생체정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진짜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기술과 시민의 소통이 필수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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