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정지 결정된 '국내 첫 原電' 고리 1호기…해체기술 수준은
美·獨 기술의 70% 수준…사용후핵연료 처리 난제
프랑스는 1000여명 보유…우리 인력은 50분의 1 불과
해체연구센터 건립도 시급
학계는 "섣부른 결정" 지적
[ 김태훈 기자 ] 정부가 지난 12일 국내 1호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2년 후 영구정지하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운영 연장에 따른 주민 보상비 등을 고려하면 경제성이 불투명한 데다 원전 해체를 통해 에너지 분야 블루오션 시장인 원전 폐로(廢爐) 기술 확보에 나서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리, 로봇을 이용한 원자로 원격 절단 등 원전 해체 관련 핵심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해체 관련 전문인력도 20여명에 불과하다. 원자력학계 일각에서는 한국 자체 기술로 폐로를 진행할 능력이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건설보다 어려운 원전 해체
원전은 건설보다 해체가 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전 해체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은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손꼽을 정도다. 한국은 1997년부터 2009년까지 소형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3’를 해체해본 경험이 전부다.
원전 해체가 어려운 이유는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 때문이다. 110만㎾급 원전을 철거하면 폐기물이 50만~55만t가량 나온다. 이 가운데 6000t이 방사성폐기물이다. 오염이 심한 원자로 등은 사람 접근조차 불가능해 로봇 등을 이용해 잘게 잘라 특수 용기에 밀폐한 뒤 폐기물처분장에 보내야 한다. 극한 방사능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로봇과 원격 절단 기술을 개발하는 게 시급하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除染) 과정을 통해 증기발생기, 가압기, 파이프 등 원전 핵심 설비(1차 계통)의 폐기물량을 줄이는 기술도 필요하다. 제염 과정에서 오염물을 거르는 여과 물질도 방사성 폐기물이 되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사용후핵연료는 처리 대안조차 없다. 고리 1호기 해체가 시작되면 인근 원전 저장시설로 사용후핵연료를 옮겨야 한다. 하지만 2024년이면 국내 모든 원전의 임시저장시설이 꽉 찰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옮길 장소도 못 찾을 수 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 해체는 방사성 물질이 어디서 유출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인력, 인프라 모두 부족
정부가 평가한 한국의 원전 해체 기술은 선진국 대비 70% 수준이다.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 기술 38개 가운데 17개를 확보했고 나머지 21개는 2021년까지 15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고리 1호기는 2017 ?가동을 멈추고 해체에 들어가기 전 5~10년간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오는 열과 방사선을 냉각하는 기간을 거친다. 정부는 이 시기를 활용해 부족한 원전 해체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원자력학계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 교수는 “2021년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실험실 수준의 기술”이라며 “안전이 중요한 원전 해체에 실제 적용하려면 더 많은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전 해체 관련 전문인력이 태부족한 것도 문제다. 현재 국내에서 해체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인력은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20여명에 불과하다. 대학, 한국수력원자력 등 유관 연구자까지 모두 포함해도 50명을 넘지 못한다. 반면 프랑스 원자력청(CEA)은 1000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권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제염해체기술개발부장은 “원전 해체가 시작되면 전문인력이 최소 150명 이상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원전해체종합연구센터 설립이지만 아직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게다가 8개 지방자치단체가 센터 유치 경쟁에 나서면서 지역 대결 구도 양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문 부장은 “원전해체종합연구센터는 기술 국산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시설”이라며 “2019년 가동을 위해서는 연내 선정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고리 1호기를 정치적 이유로 정지하기로 한 데다 원전 해체 기술을 블루오션으로 키우기 위한 한국의 기술 기반도 아직 부족하다”며 “여러 측면에서 영구정지는 너무 빠른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 제염(除染)
원전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과정. 증기발생기, 가압기, 파이프 등 원전 핵심 설비(1차 계통)에는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방사성 코발트 등이 곳곳에 남는다. 철, 니켈, 산화물을 녹이는 환원제, 크롬 산화물을 녹이는 산화제 등 제염제를 이용해 이 같은 방사능 때를 벗겨내야 폐기물량을 줄일 수 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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