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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칼럼] 교통법규도 안 지키는데 선진국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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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의식 바닥…공권력 권위 상실
법·원칙 실종에 사회 불안 커져
위법행위 반드시 엄정 제재해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독일에 고속버스가 등장한 건 불과 2년 전이다. 믿어질지 모르겠다. 철도 노조가 고속버스 운행을 반대한 탓이라고 한다. 어쨌든 고속버스는 싼 요금 덕분에 요즘 급성장세라고 한다.

궁금증이 든다. 속도 무제한 아우토반의 고속버스다. 얼마나 빨리 달릴까. 시속 130~140㎞쯤은 우리도 우스우니 말이다. 하지만 독일 고속버스는 110㎞를 절대 넘기지 않는다. 모든 버스에 속도기록장치를 달아놓고 불시에 검사하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속도상한선 110㎞를 넘긴 흔적이 나오면 즉각 범칙금과 함께 운행 정지다.

또 다른 궁금증. 독일 고속버스도 한국처럼 아무 때나 1차선을 달릴까. 아니다. 아우토반에서는 하위 차선 추월이 금지돼 있다. 하위 차선으로 추월하면 추월한 차는 물론 추월당한 차까지 제재를 받는다. 고속버스는 당연히 최하위 차선이다. 아우토반이 초고속에도 안전한 비결이다.

파리 개선문에서는 12개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개선문을 에워싼 그 큰 원형도로에는 차선이 없다. 12개 도로에서 자동차가 홍수처럼 밀려 들어와도 엉키지 않고 물 흐르듯 제 갈 길을 찾아간다. 단 하나의 원칙 덕분이다. 오른쪽 차가 무조건 우선이다. 접촉 사고라도 나면 왼쪽 차가 100% 책임이다.

선진국의 양심과 도덕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프랑스나 독일 사람들이 우리보다 항상 도덕적이고 양심적인가. 남들이 보지 않으면 애완견의 배설물을 지천으로 깔아 놓는 게 프랑스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엿보길 좋아하는 게 독일인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 모양인가. 거리에 나가보라. 신호나 속도 위반은 일도 아니다. 중앙선 침범에 불법 유턴하는 차, 일방통행 길을 거슬러 오고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난폭 운전까지,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선진국은 신기하게도 위반이 있는 곳에 반드시 경찰이 있다. 아무리 길이 엉켜도 교통경찰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우리와 다르다. 경찰이 있어도 위반 차량은 단속하지도 않는다. 단속을 해도 제재는 솜방망이다. 법을 어겨도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지킬 까닭이 없다.

미국으로 가보자. 캘리포니아주에서 빨간 신호등을 위반했다 하자. 어디선가 경찰차가 따라붙는다. 범칙금 436달러다. 우리 돈 50만원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벌점과 함께 여덟 시간 사회봉사 명령이 떨어진다. 사회봉사 등록금도 자기 부담이다. 적어도 100만원이 넘는 손해다. 뿐만 아니다. 보험료가 크게 오른다. 그걸 모면하려면 벌금을 더 내고 벌점을 없애는 게 좋다. 법원은 친절하게도 50만원을 받고 벌점을 처리해준다.

스쿨버스 정지등을 무시하면 55만원, 과속 25만~35만원, 스톱사인 위반 25만원이다. 장애인 주차공간에 주차하면 110만~210맙? 담배꽁초를 버리면 55만~110만원이다. 한 번이라도 법을 어기면 지긋지긋하게 만들어주는 게 선진국이다.

우리는 어떤가. 5만~7만원이면 만사 오케이다. 벌점도 있으나 마나, 교통신호 위반으로 면허정지를 당하려면 1년에 여섯 번이나 어겨야 한다. 법은 지키면 편하고 지키지 않으면 불편해야 한다. 이게 거꾸로 돼 있으니 교통질서가 온전할 리 없다.

범칙금을 올리자는 논의가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때마다 서민을 죽이려 드느냐며 핏대를 세운다. 정부도 서민생계형 사범이라며 때만 되면 면허 행정제재 기록을 말끔히 지워준다. 포퓰리즘적 온정주의가 판을 친다.

교통 법규도 지킬 필요가 없는데 다른 법은 멀쩡하겠는가. 거리만 봐도 그렇다.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불법 시위와 불법 텐트로 난장판이다. 밤 한강공원의 일탈 행위를 단속하는 공무원은 술에 취한 건달들에게 주먹질을 당하기 일쑤고, 오토바이 질주는 ‘매드 맥스’ 수준이다. 선진국 문턱에 서 있다는 경제대국의 자화상이다.

국민의 준법 의식은 바닥이고, 공권력은 권위를 잃은 지 오래다. 원칙 실종 탓에 사회는 늘 불안하다. 세월호에 이은 메르스 사태도 결국 법과 원칙을 우습게 생각한 결과가 아닌가. 불법과 위법이 판을 치는 사회다. 다음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울 따름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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