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성 기자의 IT's U
'디지털 소외' 노인, 스마트폰에서 '2차 소외'
<2> "몰라도 말 못해요, 부끄러워서"
10명 중 9명 바탕화면 앱 제거 못해
끊기버튼 안눌러 '통화료 폭탄' 맞기도
배경화면 못 바꾸는 노인들도 수두룩
[ 김민성 기자 ]
법정 경위인 김진희 씨(32·가명)는 재판이 시작될 때면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먼저 눈이 간다. 스마트폰을 쓰는 노인 중 소리 모드를 진동으로 바꿀 줄 몰라 당황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에 일일이 점검한 뒤 진동 모드로 돌려 놓는다. 재판이 끝나면 다시 찾아가 소리 모드로 원위치해준다. 스마트폰을 쓰는 노인이 늘면서 새로 생긴 일과다.
김씨는 “가끔 재판 도중 노인 방청객의 전화벨 소리가 울리곤 한다”며 “변경 방법을 몰라도 잘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아 일부러 찾아가 돕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부 노인은 가장 단순한 스마트폰 기능조차 제어하지 못한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그 자체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LG전자의 노인층 스마트폰 사용 실태 보고서에도 스마트폰을 쓰는 노인의 속앓이가 빼곡히 담겨 있 ?
◆“앱을 휴지통에 버리라고?”
보고서를 보면 실험에 참가한 노인 10명 중 8명은 소리·진동 설정 변경에 실패했다. 피처폰에서는 번호판의 샵(#) 버튼을 길게 누르면 됐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오면서 이 기능은 인디케이터 속으로 편입됐다. 화면 상단을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면 등장하는 인디케이터에는 진동 전환뿐 아니라 와이파이, 화면 회전, 블루투스 등 가장 자주 쓰는 설정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노인들은 끌어내리기 방식의 인디케이터 진입 자체가 서툴렀다. 아이폰은 왼쪽 측면에 진동 전환 전용 버튼이 있지만 안드로이드폰 대부분은 소리 조절 버튼 아래 위를 누르는 식이다. 일부 제조사는 샵 버튼을 누르는 피처폰 방식을 구현했지만 시도해보지 않는 노인이 대다수다. 스마트폰에 그런 옛 기능은 없을 것 같아 해보지도 않는 것이다.
소리·진동 변경도 힘든 노인에게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앱) 삭제는 무리다. 참가자 10명 중 9명이 바탕화면에 깔린 앱을 없애지 못했다. 실패율 90%. 앱을 터치한 다음 삭제 버튼을 찾는 노인이 많았다. 삭제는 못하고 결국 앱 실행만 됐다.
삭제 첫 단계인 ‘앱 아이콘 길게 누르기’를 아는 노인도 있었다. 하지만 휴지통까지 끌고 가지는 못했다. PC를 오래 써본 젊은이는 휴지통 아이콘을 쉽게 인식한다. 반면 대다수 노인은 휴지통 아이콘에 해당 앱을 끌고 와야 비로소 ‘버린다’는 동작이 실행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몰라도 안다고 답한 노인들
대다수 노인은 소리·진동 전환이나 앱 삭제 실패 후 방법을 가르쳐주면 “이젠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전화 걸기, 인디케이터 사용, 앱 사용 등 기본적 기능에 대해서도 “처음만 어렵지 배우면 그만”이라는 반응이었다.
특히 피처폰 사용자보다 스마트폰 보유 노인의 자신감이 컸다. ‘배경화면을 원하는 이미지로 바꾸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90%가 “네”로 답했다. ‘스스로 배경화면을 변경한 적이 있는가’에는 무려 96.4%가 “그렇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쓰는 노인 전부가 배경화면 사진을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바꿔봤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해당 노인들의 스마트폰을 확인해본 LG전자 측은 곧 진실을 알게 됐다. 바꿔봤다고 했지만 제품 판매 때 제조사가 깔아놓은 배경화면을 그대로 쓰는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변경해본 적이 없지만 방법도 알고, 실제 해봤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용법을 여러 번 들어도 실행에 실패하는 기능도 많았다. 통화가 끝난 후 ‘끊기’를 누르지 않는 행위가 대표적이었다. 폴더폰은 통화 후 전화기를 접으면 그만이었지만 스마트폰은 끊기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꺼지지 않았다. 가끔 상대방도 먼저 끊지 않고, 그대로 전화기를 뒀다가 통화료 폭탄을 맞는 경우도 있다.
통화 연결을 잘못 눌러 엉뚱한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실수도 흔했다. 나이가 들수록 손끝 감각이 둔해져 터치 실수가 잦았다. 제대로 눌렀는지 의심이 들어 반복 터치하는 바람에 오작동은 더 늘었다.
게다가 시력이 감퇴하면서 작은 아 箝騈?정확히 누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잠금화면을 풀 수 있는 비밀번호나 패턴을 잊어버리는 노인도 많았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LG전자 관계자는 “노인들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답하는 데 대단히 부끄러움을 느끼는 듯했다”며 “자존심도 상하고, 또 소외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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