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의 창시자 주자(朱子·1130~1200)는 박복(薄福)했다. 14살부터 가장(家長) 역할을 했다. 분가해선 아내와 사별하고 장남까지 잃었다. 불운의 씨앗이 풍수지리라 믿은 주자는 손수 두 번에 걸쳐 부친의 묘(墓)를 이장했다.
이런 그의 주장이 담긴 ‘주자어류(朱子語類)’는 조선 상례(喪禮)에서 고려의 불교식 화장 문화를 유교식 매장 문화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서양의 영혼(靈魂)은 동양에선 혼백(魂魄)이다. 혼(魂)은 영혼이고 백(魄)은 육체다. 특이점은 생사(生死)에 따라 혼백의 거처가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 혼은 폐(肺)에, 백은 간(肝)에 머문다. 죽으면 혼은 하늘로, 백은 정(精)의 모습으로 돌아와 골수에 머문다. 즉 혼은 자유로이 하늘로 사라지고, 정으로 변환된 백은 뼛속에 갇혀 일생을 뼈와 함께한다. 땅으로의 회귀다. 이 정이 깃든 뼈를 빨리 육탈케 해 땅의 좋은 기운을 먹이고 키워 차고 넘치게 만드는 것이 매장의 일차 목표다. 이후 망자와 같은 기운의 사람에게 옮아간다는 믿음이 그 다음이다. 이것은 동기감응 주자의 생사론(生死論)이다.
서해안 모 섬에서의 일이다. 연륙교가 이어지자 섬 전체 토지가격이 들썩였다. ㎡당 5만원이던 대지가 한 달여 만에 3배로 치솟았다. 얼마 후엔 음택 煮瑛繭?소문까지 나돌았다. 가격이 10배로 뛰었다. 이런 움직임에 부화뇌동했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혼백이 머무는 곳이 다르다. 혼백을 키우는 땅 역시 그 성격이 다르다. 신체기능을 원활히 보호해야 하는 양택(陽宅)은 동(動)한 기운 속에 정(靜)한 고요함이 중하다. 반면 기운의 쓰임을 강하게 받아야 하는 음택(陰宅)은 정(靜)함 속에 동(動)한 역동성이 포인트다. 두 자리가 엉성히 바뀌어 묏자리에 집이, 집터에 묘가 들어가면 원하던 바도 달리 나타난다. 죽은 자야 말이 없지만 산 자는 병원 신세 지는 일이 많아 지출이 커지고 매사 피곤하다. 음택 명당이 양택 명당이 아닌 셈이다.
500년 고려는 불교와 훈요십조의 풍수 국가로 화장을 택했다. 500년 조선은 주유야풍(晝儒夜風)의 유교 국가로 매장을 쫓았다. 다시 찾아온 500년은 혼재 속에 바른 상례를 찾기 위한 큰 발걸음으로 나아갈 때다. 음양(陰陽)이 바뀐 터는 모르는 것만 못한 것이 자연의 이치인 까닭이다. 조상을 좋은 땅에 모시려는 조선의 매장 문화는 조선 양반들을 산송(山訟·묘지소송)에 목숨까지 걸게 만들었다. 각각의 선택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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