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잃고 추락하는 산업 경쟁력
反기업정서에 기업가 정신은 위축
창조경제 일굴 지적 논리 닦아야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현대중공업이 올 3분기까지 무려 3조2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상선(商船)시장에서는 수주를 잃고 해양플랜트 수주를 많이 따냈지만 경험과 기술 부족, 시행착오, 인도 지연 등으로 프로젝트마다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입은 탓이다. 가격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혁신능력을 준비하지 못해 초래된 결과다.
압도적 세계 1위였던 한국 조선업의 이런 행로(行路)는 다른 간판 산업의 미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 불안하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경쟁력을 자랑해 왔던 산업들의 영업이익은 줄줄이 하락하고 있다. 지난달 현대중공업은 임원 31%를 감축하는 등 조직 슬림화 작업에 나섰는데, 이대로라면 향후 무수한 조선업체와 계열업체들의 연쇄적 생산·고용 축소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다른 한국의 간판 기업들도 획기적 혁신, 창조에 실패한다면 산업계와 고용시장에 미증유의 대란이 닥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미래가 도래한다면 근본적으로 누구 책임이 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매일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기업, 정부, 국민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기업 토양을 생각지 않는 연목구어(緣木求魚)식 소원일 뿐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의뢰한 ‘시장경제 인식도’ 조사에서 ‘기업 목적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59.5%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생산기업과 자선단체를 혼동하는 국민 인식체계를 볼 수 있는가.
이런 왜곡은 좌파세력이 지난 30년간 펼쳐온 여론전의 결과다. 한국의 교육·문화·예술계는 실질적으로 좌파가 완전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반(反)기업, 반시장, 반자본주의 토양을 형성하고 기업을 탐욕·불공정의 대상으로 엮어내는 여론을 조성해왔다. 사회환원 기업이 정도(正道)인 세상에서는 이윤추구의 경쟁기업은 온갖 규제로 엮어질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기업가 정신이나 창조경제가 숨을 쉴 수 있겠는가.
기업은 시장에서 도전과 혁신의 기능을 담당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시장체제의 주인공이며 생산·고용·납세의 담당자가 된다. 따라서 이념, 정서,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상부 구조 토양 형성도 선도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반시장·반기업주의자들에게 용기 있게 정면대응을 하는 대신 항상 뇌물을 주고 굴복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과거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좌파 시민단체와 운동가들에게 기부·찬조하고 사외이사나 고액 강연자로 초대한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기업이 푼 이 거대한 자원이 결국 수많은 반시장 단체들을 살찌우고 촛불시위와 희망버스를 동원하는 젖줄이 되지 않았겠는가. 반면 우파인사는 좌파 공격을 겁내 언제나 외면했다.
미국에서도 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를 내걸던 좌파정부 때 빈곤·환경·시장규제를 다루는 관료와 기금이 넘쳐났다. 좌파 싱크탱크와 신좌파(New Left)들이 미국의 지적세계를 지배하자 어빙 크리스톨 등 보수지식인들이 기업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만약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미국을 원한다면 너희 지갑을 열어 시장과 기업에 봉사하는 지적 세력을 창출하라”는 것이었다. 헨리 포드 3세, 아돌프 쿠어스 등 수많은 기업주들이 이에 호응했고 헤리티지재단, 미국기업연구소(AEI), 카토(Cato) 등 수십 개의 반(反)진보주의 연구집단이 창설 및 대폭 확대됐다. 수많은 보수주의 지식인, 논객, 작은 정부 시장논리, 자랑스러운 자본주의 논리가 생산됐다. 이렇게 해서 좌파 지배의 1960년대 미국의 이념지형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에 압도적인 보수주의 지배체제로 극적 전환됐다.
오늘의 척박한 한국 기업 토양의 원인 제공자는 기회주의적 대기업들이다. 보수 우파지식인들은 이들에게 자유시장과 자본주의를 원한다면 ‘너희 지갑을 열어 시장과 기업 편의 지적세력을 창출하라’고 질타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이 보수이념에 과감한 투자를 시작한 오랜 뒤에야 우리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경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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