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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칼럼] 엔저, 울 때와 웃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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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低가 아니라 그동안의 엔高에
도취해 있었다는 것이 문제

日기업들 두번에 걸쳐 70엔대의
역사적 엔高 견뎌냈다는 사실
한국 기업이 알아야"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일본의 양적 완화가 대한민국을 괴롭히기 위한 아베의 기획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의 과거사 공세에 대한 일본의 더러운 반격이라는 것이다. 참 기발한 발상이다. 꽤 품위 있는 경제인들의 모임에서조차 이런 이야기를 소곤댄다.

엄밀하게 보면 지금 엔 환율의 등락은 그다지 급격한 것이 아니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75엔에서 150엔 사이를 출렁거려 왔다. 원화로 따지면 1000원에서 2000원 사이를 출렁거리는 꼴이다. 그것에 비기면 원화 변동은 안정적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일시 1900원대까지, 그리고 2008년 국제금융위기 직후 1570원을 찍은 적이 있지만 대체로 1000원에서 1200원 구간을 움직여 왔다. 놀랍게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후의 ‘적절한 원화 약세’를 한국 정부는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그때 강 전 장관을 비난해대던 그 수많은 얄팍한 주장들이 지금은 또 엔화 약세를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원화보다 엔화의 가치 변동이 심한 것은 양국의 경제 규모로 보나 구조로 보나 의외다. 그러나 지난 30년의 역사는 그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1985년 이른바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는 125엔을 마치 약속된 중심축인 것처럼 수렴, 등락해왔다. 125엔은 플라자 합의에서 제임스 베이커 미 재무장관이 식당 냅킨에 휘갈겨 썼다는 운명의 125, 바로 그 숫자다. 그 중심축을 이탈해 엔화가 기조적인 강세로 돌아선 것은 역설적이게도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의 일이다. 엔화는 2007년 이후 줄곧 100엔을 밑도는 강세였다. 2011년엔 장중 한때 75엔까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지금의 일본 기업들은 그 악몽의 엔고(円高)를 1994년, 2011년 두 번이나 견뎌낸 역전의 노장들이다. 그것이 이제 125엔이라는 순풍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원화 약세에 취해 있던 한국이 겁을 먹는 것은 어느 정도는 자연스럽다.

아래에 보는 그림은 원·엔 재정환율 추이다. 원화의 중심축이 엔화 대비 10 대 1이어야 한다는 익숙한 논리는 그림에서 보는 1000원대 그래프 그대로다. 2007년까지의 키코 부분 그림자는 엔화 대비 무려 746원을 찍으며 큰 혼란을 연출했던 원화 강세기였다. 당연히 달러에 대해서도 강세였다. 같은해 10월 원화는 달러당 900원70전을 기록했다. 소비자들은 살판났고 여대생들은 일본으로 주말여행을 가서 미쓰코시 백화점의 명품을 사냥한다는 시절이었다. 기업들은 원화 강세가 끊임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키코에 몰빵하면서 점점 더 깊숙이 환투기에 몰입해 들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그림의 두 번째 부분은 ‘강만수 구간’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국제금융위기와 강만수 환율 정책이 시장을 지배했던 시기다. “일본을 이겼다!”는 한국 기업들의 환호성은 이 구간에서의 일이다. 2008년 이후는 ‘엔강, 원약’인 최고의 시기였다. 이제 그 좋았던 4년여의 시간이 끝나가는 것이다. 지난주 주형환 기재부 차관은 국회에서 원·엔 환율의 동조화를 말했다. 더 이상의 언급을 자제하더라도 원·엔 10 대 1을 말하고 있음을 시장은 잘 알고 있다. 과연 이 한·일 간 역사적 균형 환율은 지켜질 것인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말을 하면서 지난 주말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은 총재가 수단을 거론하는 것은 의외다. 이 총재는 예외인지 모르지만 역대 한은 총재 대부분은 원화 강세 취향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만해도 그랬다. 한은의 헛발질만 아니었어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한은 총재의 입장이 다소 유연해졌다는 것인가.

기업들의 비명에는 공감할 수 없다. ‘강만수 구간’ 환율에 언제까지 취해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원화 약세에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그 좋았던 시절에 경쟁력을 높여 놓지 않았다면 이것은 아베의 책임이 아니지 않나.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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