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생활경제부 기자 saki@hankyung.com
[ 김선주 기자 ] “얼굴이 다 망가졌는데 하소연할 데도 없고 도움받을 데도 없고 어쩌죠.”
한 30대 여성 직장인은 기자가 전화하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두 달 전쯤 한 백화점에서 유기농 스킨 제품을 사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싼 값을 치렀지만 유기농이니까 더 좋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한 번 바르자 얼굴과 목에 붉은 점 형태의 습진이 생겼다. 날이 더워 그런가 하고 지나쳤는데 붉은 점은 없어지지 않고 더 커졌다. 피부과를 찾으니 접촉성 피부염이고 화장품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유기농 화장품이란 광고 문구에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구제를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속시원한 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 여성 직장인처럼 ‘짝퉁 유기농 화장품’으로 피해를 봤다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소비자원이 지난해 6월 유기농 화장품 안전 실태를 조사해 ‘무늬만 유기농’ 제품 35개를 적발했지만 소비자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장품법에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심사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화장품법에는 일반·기능성 화장품 심사 기준만 있을 뿐이다. 유기농 원료에 대한 기준도 없다. 어떤 게 유기농 원료인지, 유기농 원료가 몇 % 포함돼야 ‘유기농’이란 명칭을 쓸 수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미백·주름 개선 효과가 있는 기능성 화장품으로 인정받으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관련 자료를 꼼꼼하게 제출토록 화장품법에 명시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김성찬 새누리당 의원 등은 지난해 12월 ‘유기농 화장품도 기능성 화장품처럼 제조·수입·판매업자가 품목별로 식약처장에게 유기농 인증 관련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화장품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화장품법 개정안은 8개월이 지나도록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되지 못했다.
식약처가 ‘물·소금을 제외한 전체 구성 성분의 95% 이상이 유기농 원료여야 유기농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유기농 화장품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긴 했다. 하지만 위반시 내리는 시정 명령 등 행정처분은 사후관리에 불과하다. 그러니 반칙하는 선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김선주 생활경제부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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