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희 기자 / 사진 장문선 기자] 청춘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그것이 아름답고 빛난다고 말하는 이들은 이미 청춘의 시기를 떠나보낸 이들이리라. 하지만 그 우울하고 괴로운 시기를 견디는 이들은 저마다의 반짝임을 안고 있다. 파랗고, 빛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남자. 이것은 청춘, 이민기에 대한 기록이다.
최근 영화 ‘황제를 위하여’(감독 박상준) 개봉 전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이민기는 사실 청춘이라고 불리기엔 낯간지러운 나이와 필모그라피를 가진 배우다. 이제 30대로 접어든 이민기지만, 항상 그를 떠올릴 때면 패기 혹은 이제 막 새로운 것을 발견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것은 곧 그의 필모그라피 곳곳에서 드러나는 부분이다. 모두 다른 얼굴, 다른 성격,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종국에 남는 것은 청춘. 바로 이민기의 모습이었으니까.
“욕망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처음으로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그때 ‘황제를 위하여’ 시나리오를 받게 됐죠. 일단 이환이라는 인물이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이 좋았고 마침 욕망에 대해 눈여겨보던 때라 이환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누구나 고민을 한다. 이민기는 스스로 “욕망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너무도 강렬한 욕망을 가졌기에 그것을 숨기려 발버둥 쳐왔다고 설명했다. 자기 내면에 자리 잡은, 하지만 자신마저도 외면한 감정. 욕망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시커멓게 자라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욕망을 열정으로 속이고 살았던 부분이 있었어요. 무엇 때문일까 고민하다가 ‘이게 욕망이구나’를 깨닫게 됐죠. 과거에도, 현재에도 왜 나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시나리오를 보게 됐죠. 결국 알고 있는 답이었지만 덧없고 실체가 없는 그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쫓아가게 되는 지점들이요.”
영화 ‘황제를 위하여’ 속 이환은 촉망 받는 야구선수였지만 불법 승부조작에 연루된 후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인물. 타고난 승부근성과 독기로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커져가는 욕망으로 흔들림을 겪는 캐릭터다.
끝을 향해 달릴수록 허무해지는, 실체가 없는 감정. 이는 이민기가 누구보다 공감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에게 “영화를 찍고 나니 그 허무함이 덜하던가요?” 묻자 그는 멋쩍어 웃어버린다.
“욕망의 끝이 허망할 거란 걸 모두 알지 않나요? 영화를 찍고 느껴보니 ‘역시 허망한 거구나. 민기야 이제 놓을 수 있어. 놔라’ 정도가 됐어요. 결국 끝이 허망하다는 걸 느껴보게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조금이라도 현재에 행복하려면 그걸 놔라’. 그래도 한편으로는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현재의 행복이 뭐가 중요하지?’ 결국은 계속 반복하는 거죠.”
이민기는 이환 캐릭터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배우다. 모든 감정은 지나고 나면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그 당시 조금의 걸러냄도 없이 이환의 감정을 다뤘던 이민기가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순수성이에요. 욕망이라는 감정을 최대한 순수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죠. 마치 ‘순수악’처럼요. 욕망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이환을 떠올렸을 때, 안쓰러울 수도 있는 그런 인물이 되게 만들고자 했죠.”
이민기의 말처럼 이환은 사실상 자기방어적인, 연약함을 가진 인물이다. ‘잃을 게 없다’고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왔다. 끝내는 욕망밖에 남지 않은 이환이 “멈출 수 있을까?”라는 대사를 던진 것처럼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이 깃들어있었다.
사실 ‘황제는 위하여’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거친 이야기들을 눌러 담아놓았고 틀에 꼭 맞게 깎아놓은 부분도 없다. 구태여 ‘왜’를 부여하지 않는 영화. 이에 이민기는 “새롭게 표현된 영화”라고 소개했다.
“굉장히 직선적이고 스트레이트한 영화예요. 이환은 왜 저러고, 연수와는 이렇게 되고, 왜 욕망을 따라가야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는 그런 부분이 날 것 같은 싱싱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게 단점으로 해석한다면 스토리의 부재처럼 느껴질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지점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자극적이고 세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같은 재료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것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에 “삭제된 장면 중 아쉬운 장면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럼 아예 톤이 달라지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설명할 거면 설명하고, 안 할 거면 지금처럼 강단 있게 지우고. 새로운 영화지 않아요? 아주 스토리로도 액션으로도 얘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직진하는 듯한 기분이 들죠.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욕망과 실체 없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면 감독님의 선택 응원할 수 있어요. 만약 이도저도 아닌 선을 탔으면 한편으로는 정말 지루한 뭐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영화였을 것 같아요.”
남자 냄새가 물씬 나는 영화. 그래서인지 배우들을 비롯해 감독님, 시나리오 작가, 스태프들까지 거진 남자들로 구성됐었다. “시나리오 작가님께서 현장에 늘 계셨다고 하던데”라고 말을 꺼내자 이민기는 “뭐하러 왔나 모르겠어요”라며 농담으로 되받아친다.
“부산 이야기고 감독님께서 부산분이 아니시니, 정서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려고 한 것 같아요. 저는 입봉 감독님들과 작품을 많이 해서, 자기가 쓴 책을 연출하는 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 알거든요. 그래서 (작가)형에게도 현장에 같이 있자고 말했었어요.”
서로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 거칠게 대꾸하면서도 결국에는 애정 어린 말로 마무리 짓는 걸 보면서 ‘동료라기보다는 친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후시 녹음하러 갔는데, 다들 너무 반가운 거예요. 그런데 형들이 너무 반응이 없는 거죠. ‘무슨 반응이 이래’하고 따졌더니 다들 ‘어유 지겨워’라며 도망가더라고요. 형들은 후반 작업하면서 계속 제 얼굴을 보잖아요. (웃음) 그럴 수 있죠. 아 그렇구나. 나만 반갑겠네. (웃음)”
남자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것이 유난히 즐거워 보인다. 여복이 많은 배우로 유명한 이민기지만 정작 “여자를 잘 모르겠다”는 그는 10대, 20대를 모두 남자들과 보냈기 때문에 “남자들은 숨만 쉬어도 저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고 웃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말로 해줘도 모르겠어요. 여배우들과 많이 호흡을 맞춰서 그나마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작품들이 아니었다면 전 여자에 대한 바보가 되어있을 것 같아요.”
천진난만한 얼굴. 그럼에도 이따금씩 드러나는 고민의 흔적들을 보며, 역시나 이민기에게서는 ‘청춘’의 그것이 가득 묻어난다고 여겼다. 청춘을 벗어나지 않는 남자. 늘 고민하고, 달리면서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배우.
“이제 30대예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세월이 잘 묻어나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작품들과 인연 닿았으면 좋겠고. 또…. 불같은 연애도 해보고 싶구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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