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사태로 본 금융지주회사의 현주소
'낙하산 행장'은 회장보다 정치권 등에 더 충성
과도한 경영간섭 놓고 충돌…조직역량 약화만 초래
[ 박신영/박한신 기자 ]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경영진이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으면서 국내 금융지주회사 체제가 다시 한 번 논란에 휩싸였다.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출범했지만, 협업은커녕 지주사와 자회사인 은행 경영진의 갈등 구조가 계속되면서 지주회사 체제에 대한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주사 회장이 은행장을 실질적으로 선임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회장의 은행 등 자회사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비롯한 외부 출신이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회장과 행장의 갈등 반복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것은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갈등과 반목이다. 국내 첫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가 2001년 출범한 이후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인사권 등을 둘러싼 파열음은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주인인 우리금융과 주인이 없는 KB금융이 특히 심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회장과 은행장 선임과정의 문제라는 것이다. 역대 KB금융 회장 4명은 모두 외부 출신이다. 이들은 주인 없는 KB금융의 회장이 되기 위해 어느 정도 ‘외부’의 힘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형식적으로 은행장을 선임했지만, 실제로는 은행장 자신의 ‘역량’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금융은 약간 다르다. 초기 윤병철, 황영기, 박병원 회장은 외부 출신인 반면 이팔성 회장과 이순우 회장은 내부 출신이다. 그런데도 은행장 선임과정은 다르지 않다. 은행장 선임 역시 ‘외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은행장은 회장에게 ‘빚’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은행장으로 밀어준 ‘외부’에 더 영향을 받는다. 회장과 은행장의 갈등이 터져 나오는 주된 이유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행장은 자신을 뽑아준 사람이 회장이 아닌 정치인, 경제관료로 여기는데 회장에게 충성하기가 쉽지 않다”며 “지주사 회장도 실력에 따른 내부 출신이 아니라 낙하산으로 내려왔다면 더욱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CEO 선임 때 외부 손 떼야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의 역할분담이 모호하거나, 경계를 뛰어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당장은 지주사 회장의 과도한 경영간섭이 문제다. 은행장을 무시한 채 인사권을 행사하는 회장이 많았다. 심지어 경영전략은 물론 점포전략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기도 한다.
은행을 책임지는 은행장으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참다 못한 은행장이 회장에 맞서기도 한다. 여기에는 지주사 내 은행 비중이 70%를 훨씬 넘는 것도 요인으로 작용한다. 막강한 조직을 가진 은행장이 회장에 맞서면 회장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문제는 회장과 은행장 간 갈등이 지주회사의 존립 근거인 시너지를 최대화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회장과 은행장이 갈등관계라고 소문이 나면 직원들은 모두 눈치를 보게 된다”며 “자연스럽게 조직의 역량을 최대화하기보다는 자신의 보신을 위해 줄서기에 급급하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거나, 내부 출신이 회장이 되는 지주사에서는 갈등이 적었다”며 “정치권 등 외부에서 인사에 개입하는 걸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 않으면 내부 출신이 은행장을 거쳐 회장으로 올라가거나, 회장과 행장을 겸임토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박신영/박한신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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