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이산상봉 원활한 진행·정례화 제안
北, 개발 멈춘 나선특구 협력 제기했을 듯
케리 방한 하루 전 회담…美에 메시지 '전달'
[ 전예진 기자 ]
남북 고위 당국자들이 12일 판문점에서 만났다. 고위급 접촉은 2007년 12월 이후 7년 만이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이산가족 상봉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 한·미 군사연습, 5·24 대북 제재조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군사, 안보, 경제와 관련된 남북의 모든 관심사를 놓고 포괄적으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장 차이를 확인하며 논쟁을 벌였다.
○팽팽한 탐색전
이날 남북 고위급 접촉은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열렸다. 오전 회의는 1시간20분간 진행됐으며 오후 회의는 한 차례 정회 이후 2시간 이상 이어졌다. 양측은 사전에 논의할 의제를 정하지 않아 주요 남북 현안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치열한 탐색전을 벌였다. 서로 준비한 안건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응답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뤄졌다. 우리 측은 우선 오는 20일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합의대로 열릴 수 있도록 북측에 요구했다. 북한은 지난 6일 한·미 군사연습 중지와 최고 존엄에 대한 비방 중단을 요구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재고할 수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오전 판문점으로 출발하기 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새로운 한반도를 여는 기회를 탐구하는 열린 자세와 마음으로 임하겠다”며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합의대로 잘될 수 있는 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요구와 다른 문제를 들고 나왔다. 한·미 군사연습 중지 요구를 비롯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한 내용도 논의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회의 시작 전부터 대화 내용을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 경제적 고립 탈피 절실
정부는 이날 북한이 언급한 여러 현안 가운데 이번 접촉을 통해 강조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북한이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고위급 접촉을 제안해 우리를 통해 미국에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케리 장관은 13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북한이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한발 물러서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미국에 이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창구로 활용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경제적 고립 해결을 주된 목적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작년 11월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북한에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이 발을 뺀 상황이다. 북한으로서는 장성택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나선경제특구 개발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최근 코레일 포스코 현대상선 등 우리 기업들이 나산-하산 프로젝트 실사를 위해 방북하면서 이 지역 개발을 진전시키려는 의도라는 관측도 나온다.
남북은 이번 고위급 접촉을 1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례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특정 안건을 타결하거나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닌 만큼 양측이 충분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회의는 진지한 분위기에서 이뤄졌고 남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며 “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추후 일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