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3일 미국 연방의회에 출석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Fed) 의장의 입에서 매우 낯선 “Tapering [테이퍼링]”이란 단어를 불쑥 튀어나왔습니다.쉽지 않은 이 단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사전을 뒤집니다.
동사 Taper는 ‘점점 가늘어지다’ ‘끝이 뾰족해지다’란 뜻을 지녔습니다.이는 단박에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그가 ‘헬리곱터 벤’ 별명을 얻은 ‘통화 공급을 무제한으로 늘리는 정책 ’양적완화‘의 전환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지요.
몇 개월이 지난 지금 ’테이퍼링‘은 ’양적완화 (점진적) 축소‘로 보통명사화해 자리잡고 있고요.테이퍼링은 버냉키의 언급이후 돌입 시점 자체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임기 종료를 두 달 앞둔 2013년 12월 버냉키는 자신의 정책에 대해 자신이 ‘총대’를 맸고요.
1차 테이퍼링을 통해 채권매입 규모를 기존 850억달러에서 100억달러 낮춰 750억달러로 줄였습니다. 1차 테이퍼링은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고요. 언제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등 글로벌 증시가 되레 오르는 효과를 불렀습니다.
버냉키는 이에 자신감을 얻은 건지 어쩐 지 물러나기 직전인 2014년 1월 29일 2차 테이퍼링을 ‘강행’했습니다. 매입하는 채권규모를 또 100억달러 축소해 650억달러로 줄인 것입니다. 하지만 2차 테이퍼링은 보다시피 글로벌 경제에 큰 혼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터키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신흥국 주식시장의 경우 약세를 보이고 통화가치도 대폭 하락하는 형편입니다. 한국도 증시가 상당폭 하락했고요. 국제 경제계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또 닥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팽배하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빌렘 뷔터 씨티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Fed의 마이웨이식 테이퍼링’에 대해 “매너 없고 책임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습니다.“통화정책 변경이 해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Fed는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게 그의 지적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버냉키 입에서 처음 나올 때 만큼 어렵게 느껴지던 ‘테이퍼링’이 세계 경제의 앞날에 대한 예측마저도 ‘어렵게 한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3,4,5차 테이퍼링’ 등 앞으로도 자주 접할 운명으로 보입니다. “(통화를) 뿌린 만큼 거둬 들여야만‘ 인플레이션 같은 경제에서 또 다른 암운이 닥치지 않을 것이서 입니다.
세계 경제계를 좌지우지 하는 벤 버냉키 입에서 나와 유명한 경제용어로 자리잡긴 했지만 테이퍼링은 어디까지나 ‘차용한’ 단어에 불과합니다. 이 용어는 공작기계 분야, 측정분야, 미용분야 마라톤에서 흔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공작기계에 사용하는 테이퍼로 모스테이퍼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아래 이미지와 같이 ‘테이퍼 게이지’란 이름의 측정기구도 있고요. 미용분야에서 ‘테이퍼링’은 커트를 할 때 머리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게 숱을 쳐내는 기법을 일컫습니다.
추정컨대 지난해 버냉키가 “테이퍼링”이라고 언급한 것은 마라톤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응용한 게 아닌가 합니다. 마라톤에서 테이퍼링이란 대회 출전을 목표로 한 선수가 강도 높은 훈련을 해오다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서는 수준을 낮춰 점차적으로 줄인 뒤 대회당일에 최상 컨디션으로 출발선상에 서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화한 훈련법을 지칭합니다.
이 때는 뛰는 거리도 확 줄이고 음식물로는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주로 보강하는 식입니다. 이 말이 탄생한 배경이 흥미로운데요. 1948년 런던올림픽 1만m 금, 1952년 헬싱키올림픽 5000m, 1만m, 마라톤 금메달을 따 ‘인간기관차’로 불린 체코의 자토펙이라는 선수의 일화에서 비롯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1950년 유럽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해오다 부상을 입어 약 2주간 쉰 뒤 이틀 뒤에 열린 1만m에서 우승하고 곧이은 5000m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고 합니다. 자토펙의 이 괴이한 현상에 대한 연구가 마라톤 훈련법 테이퍼링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고요.
작금의 미국 Fed 테이퍼링이 잘 진행돼 세계 경제로 하여금 좋은 컨디션으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세워야 할 터인데...
한경닷컴 뉴스국 윤진식 편집위원 js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