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설비투자 등을 위해 외부에서 순수하게 빌린 자금이 8년 만에 최소치를 나타냈다. 이익을 많이 내 돈을 덜 빌려도 된다면 기업에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지금 써야 할 돈도 ‘못 쓰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업 자금사정 좋아졌지만
16일 한국은행의 ‘2013년 2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치)’에 따르면 2분기 기업(비금융 법인기업)의 자금 부족 규모는 1조3000억원을 나타냈다. 기업이 예금과 주식 등으로 운용 중인 자금(22조원)에서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23조3000억원)을 뺀 수치다. 자금 부족 규모는 전분기(7조5000억원)와 비교해 크게 줄었다. 2004년 4분기(7000억원 부족) 이후 최소치다.
기업은 특성상 운용자금보다 조달자금이 항상 많은 자금 부족 상태다. 미래의 이윤 창출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산과 투자활동에 돈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기업을 빼고 민간 기업만 보면 2분기 3조8000억원이 오히려 남는(잉여)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성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이 같은 잉여 상황은 카드사태 직후인 2004년 이후 가장 높은 것”이라며 “그만큼 우리 기업이 건실해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분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분기 최대 영업이익을 올리는 것에 힘입었다는 설명이다.
○기업들 ‘투자처 못 찾아’
하지만 기업 자금이 남는 이례적 상황은 다른 데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대기업을 빼면 마이너스 실적을 낸 곳이 많다”며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일반 기업(금융사 제외)이 올 들어 지난달까지 회사채 발행을 통해 새로 조달한 금액(순발행금액)은 2조원에 그쳤다. 리먼사태의 한가운데 있던 2008년 같은 기간(5조원)보다 못하다. STX그룹의 구조조정과 쌍용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등의 여파로 금융회사들의 리스크 관리가 강해진 탓이다.
사정이 나은 기업들도 돈을 ‘못 쓰는’ 것은 마찬가지다. 1분기 반짝 증가(전기 대비 2.6%)한 기업의 설비투자는 2분기에 0.2% 감소세로 복귀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기업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며 “경기 회복세가 분명해질 때까지는 현금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 활성화 약발은 아직
정부가 올 들어 두 차례 투자 활성화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해외 대신 국내에서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데 투자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게 문제”라며 “이쯤에서 시장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완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분기에 감소한 가계부채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가계와 비영리단체(종교단체 노동조합 등)의 부채는 2분기 말 1182조2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5조1000억원 늘었다. 또다시 사상 최대치다. 한은은 주택 관련 차입이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했다. 김동열 실장은 “부동산 거래가 활발해지면 가계부채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며 “4분기 주택시장이 살아나면 빚 갚기가 수월해지면서 가계부채 문제가 연착륙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미/서정환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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