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작은 역할? 상관없죠"
[권혁기 기자 / 사진 김태균 인턴기자] 케이블 채널 '로맨스가 필요해'에 이어 '나인'(극본 송재정, 연출 김병수)으로 흥행 2연타를 친 이진욱(31)은 요즘에야 연기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지상파보다 케이블에서 두각을 드러낸 자신에 대해 '케이블 배우'라는 느낌에 대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이진욱을 만났다. '나인'에서의 연기가 인상깊었기에 CBM 보도국 기자 출신 앵커 박선우 이미지를 기대했지만 의외로 스포티한 의상도 잘 어울렸다. 우선 드라마 호평에 대한 축하의 말과 함께 '99수목금토일'이란 단어를 처음 기사에 넣었다고 하자 "팬들이 매우 좋아하는 말중에 하나"라고 화답했다.
이어 드라마 촬영 분위기는 어땠는지 물었다. 이에 이진욱은 "미국에서 대본을 받고 귀국한 뒤 3일만에 '나인' 팀을 만났다. 그러니까 총 열흘만에 촬영을 시작했다. 머리부터 만지고 그 다음부터 바로 시작을 해 바뻤다"라며 "그래도 다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라 촬영장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사실 '나인'은 반전드라마의 끝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나인'을 보면 끊임없는 반전에 다음화를 미치도록 기다리게 만들어 '나인폐인' '나인앓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진욱에 있어 가장 인상깊었던 반전은 무엇일까?
"촬영은 사건이 전개된 순서대로 거의 순차적으로 했어요. 그래서 감정이입이 더 수월했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주민영이 박민영으로 변한 것이죠. 정말 씁쓸한 마음이 든 반전이었어요. 조카로 바꾸려고 했던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안 죽게 만들려고 했는데 난데 없이 사랑하는 여자가 조카가 된 것이니깐요."
실제로 시청자들은 각종 게시판 및 인터넷 기사 댓글을 통해 주민영이 박민영으로 변한 순간에 '멘붕'(멘탈붕괴)이라는 표현으로 반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이진욱의 내면연기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이진욱은 "진심으로 하는 연기가 빛나려면 좋은 대본과 좋은 연출은 기본인 것 같다. 그리고 주변 배우들의 모습도 정말 중요하다. 더 돋보이게 해주고 단점을 보완해주시기 때문인데 전노민 이응경 선배님이나 정동환 선생님, 전국환 김희령 선생님, 박형식 서우진 등등 많은 동료들이 200% 잘해주셨기 때문에 드라마가 산 것 같다"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 조윤희와 찐한 키스신, NG만 수십번…연기 몰입 때문
'나인'은 초반 네팔 로케이션으로 아름다운 영상미 또한 자랑했다. 이진욱에게 있어 네팔은 처음이었다고. "힘들진 않았어요. 그래도 낙후된 환경 때문에 불편하긴 했죠.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갔는데 흙탕물이 나오고 전기가 많이 나가더라고요. 촬영을 멈췄다가 다시 재개하기를 반복했죠. 밤에 촬영은 꿈도 꿀 수 없었어요.(웃음) 전 도시가 밤이면 깜깜해졌어요."
네팔은 조윤희와 키스신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이진욱은 조윤희와 키스신에 대해 "NG가 많이 났다. 카메라 각도에 맞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야하는데 자꾸 오른쪽으로 돌렸다"라고 회상했다.
"참 이상하더라고요. 저한테 그런 습관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돌이켜보면 키스신이라는 의식을 하면 어색하니까 '키스'에만 집중을 한거죠. 그래도 키스신이니까 남자가 리드를 해줘야하잖아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요.(웃음)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어 집중을 하다보니 자꾸만 NG가 나더라고요."
상당한 집중력이라 생각했다. 그런 집중력으로 '나인'에 몰두한 이진욱은 "'로맨스가 필요해'나 '나인'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집중력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할 때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라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얼마나 '나인'에 집중했을까? 이진욱은 "연기에 감정이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연기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밥먹다가도 생각나고 누워있다가도 생각나고 친구랑 얘기하다가도 박선우가 생각났다"라면서 가장 힘들었던 감정 장면에 대해 "과거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라고 꼽았다.
그는 "상실에 대한 아픔같은 것이 있었다. 처참하게 과거에 갇혀 죽을 때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라고 느꼈다. 어린 민영에 대한 부분은 휴대폰에 메시지를 남긴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 감정소비가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는게 이진욱의 생각이다. 그는 '나인' 제작진과 출연진에 대해 "감정소비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안에서 투지가 불타오르게 만들어준 팀"이라고 극찬했다. "힘들었지만 남자라면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작품을 위해서 올인하는 편이에요. 감독님도 그러시더라고요.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가족도 버리고 나 자신도 버린다'라고. '너도 온전하게 선우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라고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힘든 캐릭터에 연기지만 우울해지고 그럴 때마다 감독님과 작가님 스태프들을 보면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거죠. 너무나도 감사해요."
이진욱은 "이런 작가님이나 감독님을 만나기도 힘들고 두 분의 조합이나 배우들끼리의 조합, 스태프와의 호흡 등 모두 만나기 힘든 작품이다. 정동환 선생님도 '이런 작품을 만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말하셨다. 감사하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공감했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나인'에 출연한 소감을 밝혔다.
또 "'이 작품을 하고 난 다음에 다른 작품이 시시해지면 어떡하냐'는 우려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자 선배님들이 '다음 작품도 이런 환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게 비정상적이다'라고 표현하시더라"라고 덧붙였다.
◆ "케이블? 작은 역할? 상관없죠."
끝으로 이진욱에게 '나인'이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된 것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만약에 '나인'이 지상파에서 방송됐다면 지금과 같은 이런 느낌은 안 나왔을 것 같다. 이렇게 매니아가 나온 드라마니까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사실 무거운 주제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케이블이기 때문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쓸 수 있는 장점도 있다"라면서 자신에게 각인될 수 있는 '케이블 배우'라는 평가에 대해 "저는 두렵지 않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제야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연기를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다듬는 법을 배워야할 것 같다"라면서 "액션을 보여드렸다는게 벅차다. 모든 신이 벽이었는데 일단 던지기를 마음 먹으니까 연기도 되더라. 케이블이든 지상파든 주연이든 작은 역할이든 상관없다. 호응을 얻지 못하더라고 가치가 있는 좋은 작품이라면 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한편 이진욱은 '나인'에서 CBM 보도국 기자 출신으로 거침없는 판단력과 자신감으로 무장한 동시대 최고의 앵커인 박선우 역을 맡아, 사랑 앞에선 한번도 솔직해지지 못한 채 시한부 인생을 마주하게 된 비운의 남자를 연기해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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