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시장경제 체제 모색' 심포지엄
계층·노사·세대 간 대립…사회갈등 OECD 3위·관리 능력은 최하위권
자영업 파괴적 경쟁…'상생 매커니즘' 살려야
한국의 사회 갈등(계층·노사·지역·세대갈등 기준)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30개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심각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사회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갈등관리 역량’은 27위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8일 서울대 경제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성경제연구소가 서울대 호암회관에서 공동주최한 ‘한국형 시장경제체제의 모색’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연구결과를 내놨다.
○노사갈등, 계층갈등 심각
김 연구원에 따르면 OECD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계층간, 노사간, 지역간, 세대간, 민족·종교간 갈등 정도를 종합 비교한 결과 한국의 갈등 수준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12번째로 심각했다. OECD를 비롯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등 국제 연구기관이 발표하는 각종 사회 갈등 관련 지표를 분석한 결과다.
언뜻보면 한국의 사회 갈등 수준이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심각한 반면 한국에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민족·종교 갈등을 빼고 계산하면 한국의 사회 갈등 수준은 멕시코와 폴란드에 이어 세계 3위로 치솟는다.
특히 노사갈등이 심각하다. 노사갈등 지수는 100점 만점 기준 70.06으로 OECD 평균(47.43)보다 훨씬 높았다. 갈등지수가 높을수록 갈등이 크다는 의미다. 사회 양극화 심화로 계층 갈등도 70.40으로 OECD 평균(64.60)을 앞질렀다.
갈등이 크더라도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김 연구원의 분석이다. 한국의 갈등관리 역량은 100점 만점 기준 55점 정도로 터키, 멕시코, 그리스 다음으로 낮았다. 갈등관리 역량을 구성하는 정치적 조정 능력, 법·제도 기반의 공고성, 문화적 관용성, 사회통합, 시장제도의 합리성 모두 OECD 평균에 못미쳤다(표 참조). 김 연구원은 “한국 사회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퇴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회 갈등 못 풀면 경쟁력 약화
이날 토론자로 나선 경제 전문가들은 사회 갈등이 한국 사회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시장 경제는 법률 등 공식 제도만으로 운용될 수 없다”며 “서로 간의 신뢰가 부족하면 거래 비용이 늘어나 사회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연구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분별하게 도입된 미국 중심의 시장경제체제가 기존 질서와 부딪쳐 사회의 비효율성이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1960~7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을 이끈 ‘상생의 메커니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과거 고도 성장기 시절은 노사 관계에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가 사회를 조정하고 통합한 ‘공생 사회’였다”며 “경제 성장을 위해 정부와 정치의 적극적인 역할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에서 알 수 있듯이 제도와 사회 규범의 개선 없는 물적 투자는 ‘고비용 저효율’로 이어지게 마련”이라며 “아직 사회 규범적으로 후진적인 한국에서 이를 해소할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국가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고등학교 취학률,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정자산 형성 비중, 연구투자 비중 등의 물적·인적 자본에서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하지만 법질서, 관료의 질 등 제도 관련 부문은 대부분 후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협력 정신 부족 자영업자 출혈 경쟁”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자영업자 급증과 이들의 출혈경쟁도 한국 사회의 갈등 조정 능력이 떨어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형 자영업 부문의 현황과 구조적 특성’ 보고서에서 협력 정신 부족을 한국 자영업의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한국 자영업은 전통 소상공인을 바탕으로 발달하지 못했고 경쟁 규범도 없어 무분별하게 밥그릇 뺏기식 파괴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괴적 경쟁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협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두얼 KDI 연구위원도 “국민 생활을 통제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국가 개입보다는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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