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부당한 기업 영향력 억제 강조…"각국 법원서 적극 인용할 것"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중남미 주요국 사법부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치는 미주인권재판소(Inter-American Court of Human Rights)가 각국의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일종의 통일된 기준을 도출해 제시했다.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미주기구(OAS)의 산하 기관인 미주인권재판소는 3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기후 위기 및 인권' 자문 의견서를 3개 국어(영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로 만들어 공개했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미주인권재판소는 의견서에서 각 국가가 국제법상 기후 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법·정책 및 기타 제반 조치를 포함해 인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환경 피해를 예방하고 완화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또 환경 피해로 인한 인권 침해 직접 당사자에 대해 보상하도록 하는 의무 규정을 적절히 수립하는 한편 기업이 가치 사슬 전반에서 인권과 기후 변화에 대해 '적절한 주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할 것도 권고했다.
의견서에는 기후 변화 관련 정책을 세울 때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 환경주의)과 과도한 기업 영향력을 억제할 것과, 온실가스 배출을 유발하는 기업 활동을 규제하고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주문도 담겼다.
이번 의견서는 콜롬비아와 칠레에서 2023년에 권고 기준을 요청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미주인권재판소는 부연했다.
미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글로벌 기후변화법 연구센터(Sabin Center)의 마리아 안토니아 티그레는 로이터통신에 "미주인권재판소 의견서에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의견서를) 판례(precedent)처럼 인용하고 있다"며 "해당 사안에 대한 분쟁이 생기면 각국 법원이 의견서에 명시된 내용의 취지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의견서는 국가·단체·개인이 기후 관련 문제에 있어서 법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지는 최근 글로벌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한국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정부의 기후 위기 대응책이 부실하면 환경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인정한 사례로 꼽힌다.
당시 헌재는 국제사회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하면서 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게 책임이 전가돼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해석을 했다.
지난해 4월엔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온실가스 저감 노력 미비에 따른 기후 변화 대응 실패를 인권 침해로 봐야 한다는 판단을 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AP통신은 미주인권재판소의 의견서가 오는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관련 국제사회의 협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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