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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투하", "화가 치민다"…삼성·브로드컴 협상 막후 살펴보니
브로드컴 직원 메모 등에 '기업윤리에 반하는'·'협박' 등 표현
삼성전자, 4천억원대 피해 주장…손해배상 청구 소송 나설 듯


(세종=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삼성전자[005930]에 '갑질'을 했다고 판단한 것은 브로드컴 직원조차 불공정한 수단을 동원해 삼성전자를 협박한다고 인식한 정황이 조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생산라인 차질이 우려된다', '가진 카드가 없다'며 브로드컴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21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2019년 삼성전자가 부품 공급 다원화 전략에 따라 갤럭시 S20에 브로드컴 경쟁사인 코보의 OMH PAMiD(통신 신호 품질을 향상하는 RFFE 부품들을 결합한 모듈)를 탑재하자 삼성전자에 여러 차례 불만과 실망을 표현했다.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 대표이사에게 "증오스러운 경쟁자"의 부품을 채택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원래 최첨단 RFFE와 커넥티비티(와이파이, 블루투스) 부품은 대부분 브로드컴이 생산했는데, 2018년부터 퀄컴·코보 등이 유사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경쟁이 시작되자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커넥티비티 부품을 100% 독점 공급하는 상황을 이용해 RFFE까지 독점 공급하고자 LTA 체결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와 LTA 협상을 개시한 이후에는 구매 주문 승인 중단(2020년 2월 14일 이후), 부품 선적·기술지원·생산 중단(2020년 3월 5일 이후) 순으로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삼성전자는 처음에는 RFFE와 커넥티비티 부품 모두 LTA 체결이 어렵다는 입장(2020년 2월 24일)이었으나, 이런 압박에 못 이겨 2020년 3월 27일 연간 7억6천만달러 이상 브로드컴의 RFFE 및 커넥티비티 부품을 구매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브로드컴은 RFFE 부품 100% 탑재 또는 연간 8억달러 구매를 요구했는데 요구를 상당 부분 관철한 것이다.
삼성은 이후 구매 물량을 채우기 위해 이미 채택한 경쟁사 부품을 브로드컴 부품으로 전환하거나 내년도 물량을 선주문해야 했다.
협상 당시 삼성전자와 브로드컴 직원들이 남긴 이메일, 업무 메모를 보면 양사 간 힘의 불균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삼성 측 협상 담당자들은 '이따위를 초안이랍시고 던지는 행태에 화가 치밀지만, 카드가 없다', '생산라인에 차질이 우려된다', '브로드컴이 급한 게 아니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반면 브로드컴 담당자는 삼성전자에 취한 구매 승인 중단 등 조치를 스스로 '폭탄 투하', '핵폭탄'에 비유하고 '기업윤리에 반하는', '협박'이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업무 메모를 이메일 형식으로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법률대리인은 지난 13일 제재 여부와 수위를 논의하는 전원회의에 참석해 "브로드컴의 행동은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공급망 교란 행위"라며 "부품을 볼모로 국내 기업의 영업과 시장 경쟁을 위협할 수 없도록 명확히 조치해달라"고 말했다.
LTA 체결·해지 협상을 담당했던 송인강 삼성전자 상무도 "브로드컴은 S20 단말기 생산 중단 시 발생할 막대한 매출 손실과 브랜드 가치 저하를 볼모로 불합리한 조건을 관철했다"며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공정위에 신고한 미국 퀄컴의 선임법무이사도 전원회의에 나와 "브로드컴을 충분히 제재하지 않으면 반경쟁 행위를 지속할 것"이라며 브로드컴 제재 주장에 힘을 실었다.
삼성전자는 추후 브로드컴을 상대로 강요된 LTA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는 민사 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전자는 LTA로 인해 더 저렴한 타사 부품을 이용하지 못해 2억8천754만달러(약 3천855억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했고 3천876만달러(약 520억원) 상당의 과잉재고도 떠안았다며 총 3억2천630만달러(약 4천375억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정위도 삼성전자가 최소 1억6천만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담했다고 인정했다.
moment@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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