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어쩌다 北에 손벌리는 처지까지…"왕따국가 전락 탓"
美군사전문가 "김정은 방러, 러시아의 절박한 상황 보여줘"
전쟁 전까지는 유럽 목줄 쥔 '스트롱맨'으로 영향력 과시
졸전·민간인학살·용병반란에 소련 유산 탕진하고 궁지로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용병들의 무장반란 등으로 입지가 흔들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절박한 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군사작전'을 선언하기 전 푸틴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은 사상 최고조에 이른 듯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 일부 국가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추진이란 무리수로 푸틴의 '역린'을 건드렸다며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렸다.
확전을 우려한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개인화기 이상의 무기 제공을 거부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은 아예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러시아 영향권에 편입시키자는 제안마저 내놓았다.
◇ 유럽 목줄 쥔 스트롱맨서 1년 반 만에 '전범'으로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현재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채 사면초가에 놓였다.
기초적인 보급선 확보조차 못 한 채 졸전을 거듭하는 러시아군의 부실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의 뒤를 잇는 군사강국이란 이미지를 상실한 데 따른 측면이 크다.
이에 더해 러시아군이 점령지에서 벌인 잔혹한 민간인 학살이 드러나면서 외교적 고립이 심화했고, 푸틴 개인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 영장을 발부하면서 다른 주요국 정상이 모두 모이는 국제회의에도 화상으로만 참석할 수 있는 망신스러운 입장이 됐다.
서방의 고강도 제재로 가뜩이나 취약하던 경제는 더욱 흔들리고 있고, 젊은 층 다수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되면서 잠재성장률에도 타격을 입었다.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이 개전후 30만명(사망 12만명·부상 18만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미 정부 추산치를 입수해 보도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세계 2위 핵무기 보유국이란 점을 제외하면 서방과의 군사력·국력 경쟁에서 사실상 탈락한 채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게 서방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 '기르던 개' 프리고진에게 물리며 지도력 붕괴 위기
푸틴 대통령은 반미(反美)를 공통분모로 가진 중국, 이란 등과 밀착해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친 모양새다.
올해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국을 방문했을 때는 숙소로 돌아가는 시 주석을 자동차까지 직접 바래다주는 파격을 선보이는 등 전례없이 극진히 환대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시 주석의 발언은 원론적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회담의 최대 관전 포인트가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것인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조차 과도한 친밀감을 보이는 러시아와 외견상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6월 23일 한때 최측근이었던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부하들을 이끌고 무장반란을 일으키면서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은 치명상을 입었다.
한 줌에 불과한 용병들이 모스크바로 질주하는데도 러시아 정규군은 적극적으로 막아서지 않고 묵인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반 주민들은 오히려 반란군을 환영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장반란은 벨라루스의 중재로 하루 만에 끝났고 이후 프리고진은 의문의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과거와 같은 '스트롱맨'의 위세를 되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北 외엔 손벌릴 상대 없었나…"두 왕따 국가 지도자 만남"
러시아가 북한이 '전승절'로 부르는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70주년을 계기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북한에 파견, 군사협력 강화에 합의한 것이나, 김정은 위원장이 이르면 내주 러시아를 방문하기로 한 것은 이처럼 약화한 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포탄과 무기 등의 지원에 나설 만한 우방이 북한 외엔 없게 됐다는 이야기일 수 있어서다.
미 육군 예비역 중장인 마크 허틀링은 현지 시각으로 4일 CNN 방송에 출연해 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만남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왕따 국가'(pariah state)들의 자포자기한 두 지도자가 모이는 것"이라면서 "이건 푸틴이 도움을 얻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제임스 마크 미 육군 예비역 소장은 "러시아는 지금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추가로 지원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무기지원이 러시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김정은과 푸틴이 새로운 무기거래를 맺는다면 북한은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이전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반면, 허틀링 중장 등은 북한이 제공할 무기가 대부분 옛 소련 시절의 구형 무기와 포탄 등일 것이라면서 이는 전략적으로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제 정밀무기로 러시아군 포병대에 막대한 피해를 줘왔다. 마크 소장은 "물량이 많은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서도 "이것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투 결과를 전략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