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항공이 호주서 매일 텅 빈 비행기 운항하는 이유는?
도하∼멜버른 운항 횟수 제한에 인근 애들레이드 공항을 목적지로 정해
초기엔 애들레이드 티켓 판매조차 안 해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카타르 항공의 QR988편은 지난해 11월부터 매일 오전 5시35분 호주 빅토리아주의 멜버른에서 출발해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애들레이드로 향한다.
하지만 이 항공기를 이용하는 승객은 평균 한 자릿수에 불과하며 심지어 한 명도 없는 날도 있다. 그런데도 카타르 항공이 이 항공편을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
9일(현지시간) 일간 가디언 오스트레일리아에 따르면 카타르 항공이 매일 354인승 보잉 777-300 항공기로 멜버른과 애들레이드를 유령 비행하는 이유는 호주와 카타르 간 운항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유령 비행이란 승객 탑승률이 10% 미만인 항공편을 말한다. 각종 제도를 지키기 위해 승객이 없어도 의무 비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타르 항공은 현재 멜버른과 시드니, 브리즈번, 퍼스 등 호주의 주요 4개 공항에서 주 28회 운항권을 갖고 있다. 이에 맞춰 카타르 도하에서 각 도시로 매일 1회 왕복 항공편을 운항한다.
카타르 항공은 이용객 수요가 많아지자 더 많은 운항을 원했고, 호주 정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일종의 편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카타르와 호주는 이들 4개 공항을 제외한 비주요 공항은 횟수 제한 없이 운항할 수 있는데 이를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타르 항공은 지난해 11월 도하와 애들레이드 간 항공편 운항을 시작하면서 중간 기착지로 멜버른 공항을 넣었다. 출발·도착지만 애들레이드로 해 놓고 사실상 멜버른으로 오가는 승객을 위한 항공편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승객은 멜버른에서 타고 내리기 때문에 애들레이드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은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도하에서 멜버른을 거쳐 애들레이드로 향하는 QR988편을 타고 애들레이드 공항에서 내리는 승객은 거의 없다.
이 비행기가 중간 기착지인 멜버른에 도착하면 현지시간 오후 11시 30분이 되는데 애들레이드 공항은 밤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 공항 이용이 중단된다. 결국 멜버른 공항에서 밤새 대기하다 오전 5시 35분에 비행기에 다시 타야 해 이용객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도하에서 애들레이드로 가는 직항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카타르 항공은 도하와 애들레이드 직항편을 운행 중이다.
카타르 항공 입장에서는 이 비행기를 이용해 멜버른∼애들레이드 티켓만 따로 판매하면 좋겠지만 이 권한도 없어 유령 항공을 감수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카타르 항공은 이 항공편 운항 초기엔 도하∼멜버른 티켓만 판매하고 애들레이드로 오가는 티켓은 판매하지도 않았다. 소수의 승객을 위해 각종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텅 빈 항공기를 띄우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호주 당국이 이를 알고 제재하면서 지금은 도하∼애들레이드 티켓도 판매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 항공편의 목적은 멜버른 공항 이용을 위한 것"이라며 "카타르 항공은 업계와 법률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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