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도 이사람부터 찾는다…대서방 여론전 주도 우크라 넘버2
PD출신 실세 대통령실장, '다윗 대 골리앗' 프레임·젤렌스키 카리스마 부각
무대감독 역할…"공식 외교는 죽었다, 지금은 소프트 파워 필요한 새로운 시대"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우크라이나가 그간 서방의 대규모 지원을 받은 데는 대중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쳐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오른팔'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실장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나는 공식적 외교에 반대한다. 공식 외교는 죽었다"며 "지금은 새로운 시대고, 소프트파워가 필요하다.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예르마크 실장의 지난달 인터뷰 발언 내용을 소개했다.
실세인 이인자 예르마크 실장이 여론전을 주도하며 우크라이나의 대(對)서방 외교전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르마크 실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오른팔 또는 2인자로 불리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부터 무기를 더 지원받는 일부터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을 감독하는 일까지 중요 업무를 맡고 있다. 백악관이 우크라이나와 통화를 하고 싶을 때에도 그에게 전화를 건다고 WSJ은 전했다.
올해 51세인 그는 45세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2010년대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때 방송국의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이후 10년 이상 관계를 이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전방 부대를 방문하든 해외에서 회담에 나서든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 예르마크는 자기 일은 젤렌스키를 보좌하는 것이라며 그의 신임을 받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WSJ은 예르마크 실장이 주도해 우크라이나가 대중을 상대로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의 성격을 여론전으로 일찌감치 파악하고 연예인 등 유명인을 동원해 서방의 대중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심기 시작한 막후에는 예르마크 실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과거 연예계에 몸담았던 젤렌스키 대통령과 예르마크 실장이 서방 국가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를 전쟁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챘으며, 예르마크 실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에 빗대어 젤렌스키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활용하는 일종의 무대감독 역할을 해왔다고 WSJ은 분석했다.
작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 젤렌스키와 그의 보좌관들은 키이우에 머물렀는데 당시 키이우에서 러시아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미국 할리우드 배우 숀 펜을 예르마크가 대통령 관저로 초대했다.
이후 숀 펜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파워'를 내놨다.
숀 펜 외에도 U2의 리드싱어 보노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찾았고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은 지난해 TV에 출연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WSJ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정보 물결이 효과적이었다"며 "팔로워가 많은 사람일수록 정보의 물결은 더 커지고 우크라이나가 받는 주목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자신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졸업식이나 영국 글래스턴베리에서 화상으로 연설을 하는 등 다양한 대중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대중 여론전을 펼치면서 동시에 예르마크는 서방과 협상을 통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얻어내려 했다.
그는 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우크라이나가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 우크라이나인들의 시신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고 WSJ은 전했다.
예르마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안에 브라질과 인도 같은 국가들의 지지를 얻으려 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대중을 상대로 한 외교를 위해 연예인을 초청하려고 한다고 WSJ에 전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팔로워 6천300만명이 있는 한 콜롬비아 가수를 찾아낸 뒤 예르마크는 "나는 이 가수를 모르고 음악도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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