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반군주제 시위대 등 52명 체포…인권단체 "여기가 러시아냐"
대관식날 전국 각지서 시위…리버풀 축구팬들, 경기 전 국가 나오자 야유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치러진 6일(현지시간) 런던 등 곳곳에서 군주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의 시위가 일어나 50여 명이 체포됐다.
로이터·AFP통신과 영국 스카이뉴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반군주제 단체인 '리퍼블릭' 회원 등 수백명이 런던 중심가에 모여 '내 왕이 아니다(#NotMyKing)'라고 적힌 노란색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왕실에 들어가는 비용이 지나치게 많고 현대 입헌 민주주의에서 왕실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며 왕 대신 선출된 국가원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위 참가자는 "이거 좀 바보 같지 않나요"라는 플래카드 문구로 군주제에 의문을 표했다.
시위대는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하자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글래스고, 웨일스 카디프 등 영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수백명이 모여 반군주제 시위를 벌였다. 참가자들은 "군주제를 폐지하고 국민들을 먹여살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왕정 타도"를 외쳤다.
영국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물가가 고공행진 하는 가운데 자산이 많은 왕실을 위해 거액을 들여 대관식을 치르는 데 대한 반감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런던 경찰은 이날 저녁 성명을 내고 대관식을 전후로 소란 행위, 공공질서 위반, 치안 방해, 공공 방해 모의 등의 혐의로 52명을 체포해 구금 중이라고 밝혔다.
버킹엄궁 앞 도로 '더 몰'에서 14명을 체포했으며 이 가운데 13명은 치안방해를 막기 위해 연행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또한 소호 지역에서 공공방해 모의 혐의로 3명을 체포했으며 이들이 대관식을 방해할 목적으로 준비한 경보기 등을 압수했다. 또 세인트제임스 공원에서 메가폰을 가지고 있던 남성도 '말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체포된 시위대 중에는 '리퍼블릭'의 그레이엄 스미스 대표도 포함됐다.
리퍼블릭 측은 스미스 대표 등 주최 측 인사 6명이 대관식 시작 3시간여 전인 이날 오전 7시30분께 트래펄가 광장에서 플래카드와 음료 등을 준비하던 중 경찰의 검문을 받고 체포됐으며 플래카드도 압수당했다고 말했다.
런던 경찰은 스미스를 체포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시위대가 페인트로 공공 기념물을 훼손하거나 '공식 이동'을 방해할 것으로 보여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체포된 이들 가운데에는 환경운동단체 '저스트스톱오일(JSO)' 회원들도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더 몰 인근에서 장벽을 넘으려 계획했다고 설명했지만 JSO은 단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20명이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단체 '애니멀라이징(AR)'도 대관식장에서 떨어진 곳에서 행사와 관계 없이 비폭력 시위를 벌이는데도 경찰에 체포됐다며 "이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전체주의적 탄압"이라고 성토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도 경찰이 이날 강압적으로 시위대를 체포했다며 "이는 영국이 아니라 러시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경찰은 대관식 직전인 지난 3일 도로·철도 등을 막는 시위대를 최대 12개월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한 공공질서법을 발효하고, 군주제 반대 시위를 계획하는 단체에 경고문을 보내 논란을 빚었다.
한편 이날 오후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EP) 리버풀과 브렌트퍼드의 경기에 앞서 국가가 연주되자 리버풀 팬들 다수가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EPL 측은 앞서 대관식 당일 경기하는 구단에 경기 시작 전 국가를 연주해 찰스 3세에게 경의를 표할 것을 강력히 권했다.
스카이뉴스는 리버풀 구단 측이 기득권층에 강한 반감을 지닌 지역 축구 팬들의 성향에도 국가를 연주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리버풀 팬들은 지난 3일 풀럼과의 경기에서 '대관식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조롱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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