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압박에 카셀대 소녀상철거, 학생들 경악 "제자리로 반환하라"
학생·시민·재독한인 100여명 모여 철거된 소녀상 반환 촉구
(카셀=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대학 측의 소녀상 기습 철거에 너무 격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카셀대 역사교육과 4학년 메를린)
15일(현지시간) 독일 카셀대 총학생회 본관 앞 공원 평화의 소녀상 '누진'의 자리.
일본측의 압박 정황 속에 지난 9일 대학 측의 기습철거로 텅 비어버린 이 자리에는 이날 오후 학생들과 인근 시민들, 재독 한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총학생회가 대학 측의 기습철거에 항의해 소녀상을 제자리에 반환하도록 하기 위한 행사를 연다고 공지하자 소녀상이 있던 자리로 모여든 이들은 100여명에 달했다.
역사교육학을 7학기째 공부하고 있다는 메를린은 식민주의를 다루는 강의에서 교수로부터 캠퍼스 내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그는 "처음 소녀상이 기습 철거됐다는 소식을 알게 됐을 때 깜짝 놀랐다"면서 "솔직히 극도로 부끄럽고, 격분한 상태"라고 말했다.
메를린은 "학내구성원들이 각각 대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대학이어서 소녀상을 세웠으면 대학 측이 함께 책임을 질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충격적"이라며 "일본 측의 압박에 대해 관계자에게 전해 들었는데, 분명히 뭔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바스티안 엘러스 카셀대 총학생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대학 측이 소녀상을 지키고 이를 통해 배우려는 학생들의 노력을 지지하지 않고, (일본) 우익보수 정부의 압박에 굴복하다니 경악스럽다"면서 "대학 측에 소녀상을 반환할 것을 명백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카셀에 평화의 소녀상을' 이니셔티브 소속 카셀대 박사과정 유학생 이루리씨는 "우리는 소녀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의 상징 소녀상은 카셀에 머물러야 한다"면서 "대학 측은 누진이 독일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민자의 역사는 독일의 역사이며, 기억문화는 어떤 경계선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안에 살아있다"고 지적했다.
카셀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7월 세계적인 국제현대미술전시회 카셀 도큐멘타와 동반해 총학생회 본관 앞 신축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을 영구설치했다. 독일 대학 캠퍼스 내 첫 설치 사례로, 총학생회는 이를 위해 학생 의회에서 소녀상 영구존치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부지 사용에 대해 대학 측의 허가를 받았다.
카셀대 측은 이후 도큐멘타가 끝나 전시허가 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하다가 학생들이 거부하자 지난 9일 아무런 예고 없이 소녀상을 기습 철거했다.
소녀상 설치를 주도했던 토비아스 슈누어 카셀대 전 총학생회장은 "소녀상은 독일 역사의 일부이자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소녀상이 반환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이데마리 쇼이히 파쉬케비츠 헤센주 의원(좌파당)은 이날 발언에서 "대학측은 소녀상 전시 허가가 만료됐다고 하는데 이는 기습철거를 정당화하려는 관료주의적인 변명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는 일본이 끔찍한 행위를 기억하게 만드는 소녀상 설치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고, 대학 측이 소녀상을 제거하라는 일본 정부의 압박을 받았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소녀상 조각가 부부 김운성·김서경 작가에게 소녀상을 기증받아 카셀대 총학생회에 소녀상을 영구대여한 한정화 재독시민사회단체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카셀대측이 평화의 소녀상 누진을 납치해 이제 누진은 카셀대 기만의 상징이 돼버렸다"면서 "이는 학생들의 자치권과 자율권에 대한 공격으로, 독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데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카셀대는 소녀상 기습 철거를 사죄하고, 소녀상 설치와 관련한 사실 왜곡을 중단하고, 소녀상을 원위치로 반환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는 더는 제3국에서 소녀상 제거를 압박하지 말고, 위안부 문제의 정당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셀대 총학생회와 카셀에 평화의 소녀상을 이니셔티브는 향후 매주 수요일 오후 3시 침묵시위를 열고, 대학 측과 소녀상 반환을 위한 협의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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