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외신 주목…"양국관계 이정표, 난관은 여전"
로이터·NYT "북한 핵 위협과 중국과의 경쟁관계 관리 필요성에 대응"
BBC "한국이 더 많이 양보…일본, 전략적·외교적 승리"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16일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외신들은 최근 10여년간 경색됐던 한일관계의 해빙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주목했다.
다만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자국민과 자국 내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도 진단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핵무기 계획과 중국의 군사적 야심에 따른 위협에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 대응하려는 의지가 이번 회담 개최에서 강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과 일본의 화해가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서도 중요하다며, 역내 미국 동맹국 중 가장 강대한 양국이 사이좋게 지내며 중국을 저지하는 요새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미국 입장에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NYT는 2011년 12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해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배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으나 일본측이 거부했고, 이어 2012년 8월 이 전 대통령이 한국 국가원수 중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고 일본 측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10여년 만에 이뤄지는 한국 대통령의 이번 도쿄 방문은 양국 지도자들이 국내 여론을 얼마나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직 외교관인 미야케 구니히코 일본 리츠메이칸대 객원교수는 "한일관계의 90%는 국내 정치"라며 "따라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낙관한다"면서도 '조심'보다 '낙관'에 방점을 찍었다.
NYT는 현재로서는 기시다 총리보다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험이 더 크다고 설명하면서 한국 정부가 지난 6일 내놓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에 대해 한국인의 56%가 "굴욕 외교"라고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13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57%가 한국 측의 해법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오는 등 국내 여론이 호의적인 편이지만, 자유민주당 내 우파 등 보수파들의 반대가 기시다 총리의 입장에서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우파 성향인 산케이신문은 지난주 일본 정부가 한국 측 해법을 환영한 데 대해 "극히 유감스럽다"고 평가했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부족과 공급망 문제,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바꾸려는 중국의 야심 등을 한일 양국이 관계개선을 계속해야 할 이유로 꼽았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NYT에 "협업과 협력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외부적 사건들이 있다"며 한일 관계가 냉랭했던 최근까지도 한미일 3자협의는 계속됐고 작년에만 40차례 넘게 열렸다고 지적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중국은 한일 양국이 서로를 증오하기를 기대한다"며 이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약화하려는 중국 측 전략의 일부라고 NYT에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명분으로 역사적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주로 북한의 핵 위협에 관한 우려와 중국과의 경쟁관계를 관리할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전문가들과 분석가들의 설명을 전했다.
로이터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사이의 분쟁이 중국의 영향이 차단된 첨단기술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방해해 왔다고도 설명했다.
영국 BBC방송은 '적인 동시에 친구'(frenemy)인 한국과 일본이 양국 관계에 '이정표'가 될 정상회담을 한다며, 서울 주재 진 매켄지 특파원과 도쿄 주재 샤이마 칼릴 특파원의 기사를 함께 배치해 양국의 분위기를 전했다.
매켄지는 "이번 정상회담은 다년간 깨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지금까지 서울은 도쿄보다 더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 고위 외교관이 내게 말했듯이, 조명이 켜지고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이 댄스플로어를 가로질러 (일본에게 다가가서) 춤을 추자고 이웃(일본)에게 청했고 일본도 이에 응했다. 하지만 한국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칼릴은 양측 모두가 관계개선으로 득을 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는 일본에게 있어 전략적·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릴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북한과 중국의 위협이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며 "한국과의 안보협력 강화로 일본은 이런 위협에 대처하는 데 입지가 훨씬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매체 '더 디플로맷'에 객원 필자 자격으로 기고한 가마타 지오는 "강제징용 분쟁의 최종적 해결은 협상 테이블에서 나오는 결과에 달린 것이 아니라,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각자 자국에서 이번 협상에 가장 반대하는 개인들과 집단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느냐에 달렸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다음 선거 주기에서 진보진영이 세력을 얻을 경우 일본과의 관계개선 구상을 포함한 윤 대통령의 치적 전체가 면밀한 검토 대상이 될 것이며, 스스로 '비둘기파'라고 자처해 온 기시다 총리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그를 밀어준 당내 최대 파벌 아베파 소속 보수파 정치인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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