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1년, 반러로 뭉친 서방…'범세계적 단일대오'엔 물음표
아프리카·남미·중동·아시아 국가들 '전략적 중립' 유지
중립입장 국가들에 우크라 전쟁은 '유럽과 미국의 문제'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4일로 1년을 맞으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맞서 세력을 결집하며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서방을 넘어 전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인도와 남미,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국가 상당수가 전략적 중립을 유지하며 러시아와 교류하고 있어 '글로벌 반(反) 러 연합'이라는 미국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 유엔은 193개 회원국 가운데 141개국의 찬성으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개전 직후 유엔 결의에서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47개국이 기권하거나 불참하는 등 '중립' 입장에 섰고 이들 국가 가운데 상당수가 서방의 제재 속에서도 러시아에 경제적·외교적 지원을 제공했다.
이에 비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국가는 33개국에 그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군수품 등을 지원하는 국가 수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쟁 발발 1주년 전날인 23일 유엔 총회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에 141개국이 찬성표를 던졌지만 중국,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반구의 여러 국가는 '서방의 전쟁'임을 강조하며 기권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2는 러시아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는 국가에 살고 있다.
NYT는 이처럼 전쟁 1년이 지난 현재 서방의 핵심 연합은 공고하지만 전 세계가 이에 동참해 러시아를 고립시키지는 못했으며, 세계는 둘로 나뉘기보다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중동 지역에서 미국·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조차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과 미국의 문제로 간주해 중립적인 목격자나 중재자를 자처하면서 유연한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립 입장인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자국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보기보다는 침략에 따른 경제적·지정학적 격변 속에서 국익을 보호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를 통해 서방의 제재를 회피하고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다.
WP도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노력이 실패했다는 증거를 중국·이란 등 러시아 동맹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적 분열 양상과 함께 빠르게 변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고 전했다.
실제로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의 무역이 40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해군은 최근 러시아·중국과 군사훈련을 했다.
중남미의 대표적 친미 성향 국가인 콜롬비아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지난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발발한 이유가 더 명백해질 필요가 있다"며 우크라이나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WP는 최근 10여 년간 미국과 서방이 남반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무관심했다고 지적하며, 그에 따른 반감이 해당 지역 국가들이 서방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짚었다.
서방이 물러난 빈자리에 러시아와 중국이 들어와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서방의 패권에 대안을 제시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은 물론 미국과 지리적으로 밀접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환심을 샀다는 분석이다.
남아공의 정치분석가 윌리엄 구메데 대표 민주주의제작소재단(DWF) 대표는 "서방은 지난 15년간 전세계에서 분노가 쌓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으며 러시아는 이 점을 악용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나토와의 전쟁, 서구 대 나머지 국가의 대결로 보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칸왈 시발 전 인도 외무장관도 "서방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식량 위기를 러시아 침공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서방의 제재 탓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영토보전 원칙에 기반한 세계질서가 유지되려면 러시아에 맞서야 도덕적으로 옳다는 주장에 이들 국가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적 갈등이 아니라 유럽의 전쟁이라고 보고 있으며 서구의 시각을 따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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