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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다보스포럼 '러시아 전범관'…사진 4683장이 전하는 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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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다보스포럼 '러시아 전범관'…사진 4683장이 전하는 참상
과거 '러시아관' 건물 '러시아 전쟁범죄관'으로



(다보스[스위스]=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검은 비닐봉지에 쌓여 땅속에 파묻힌 시체,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러시아군의 총격을 피해 달아나는 아버지, 미사일 공격을 받아 두 다리를 잃은 20대 젊은이….
22일(현지시간)부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가 열린 스위스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러시아가 한때 자국을 홍보하던 건물이 올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는 장소가 돼 버렸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핀추크 아트센터와 빅토르 핀추크 재단이 WEF 본 행사장으로 이어지는 프로므나드 거리에 '러시아 전쟁범죄관'을 마련한 것이다.
프로므나드 거리에는 WEF에 참가하는 각국 정부와 기업이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홍보관이 들어서 세계 각국에서 온 정·재계 인사와 취재진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5일 '구 러시아관', 즉 '현 러시아 전쟁범죄관'에서 만난 비요른 겔트호프 핀추크 아트센터 예술감독은 연합뉴스에 "전시회를 위한 사진을 고르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가감 없이 보여주되, 지나치게 잔혹한 사진은 제외하려 했다고 한다.
바꿔말하면 사진으로도 차마 눈으로는 보기 어려운 참혹한 장면이 우크라이나에선 실제로 벌어졌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참상을 담은 수많은 사진 중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 속에 촬영한 것인지 검증할 수 있는 사진을 추리고 나니 우크라이나 사진작가 50여명이 촬영한 사진 4천684장이 남았다.


협소한 공간에 4천장이 넘는 사진을 한꺼번에 전시할 수 없었기에, 전시회장에는 일부만 전시하고 나머지는 영상으로 만들어 대형 스크린으로 내보내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니 키이우, 하르키우, 체르니히우, 마리우폴, 부차, 이르핀, 크라마토르스크 등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 또 살아남는 사람들을 담은 사진 22장과 마주쳤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그려놓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를 담은 미완성 지도'에는 5월 9일 기준 최소 4천177명의 민간인이 죽었고 4천378명이 다쳤다는 숫자가 쓰여있었다.
겔트호프 감독은 "실제 발생한 피해를 생각하면 여기 쓰인 숫자는 지극히 일부"라며 "전쟁범죄는 추정치가 아닌 사실에 근거해야 하므로 엄격한 기준으로 따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의 공격이 집중된 마리우폴, 볼노바하, 이지움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는 사상자 수를 가늠할 수 없어 숫자 대신 물음표를 채워놨다.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주던 겔트호프 감독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시신과, 장바구니를 손에 쥐고 걸어가는 남성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긴 사진을 '최악의 사진'으로 꼽았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방식도 그렇지만, 시신이 채 수습되지 못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도 무심한 표정으로 제 갈 길을 가는 산 자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전쟁에 익숙해졌는지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 남성에게도 사정이 있겠죠.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든지. 누군가 길거리에 죽어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일상으로 받아들인다니.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요"
WEF 연차 총회 일정에 맞춰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숫자를 세지 않아 정확한 관객 규모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매일같이 압도적인 관심이 쏟아졌다는 겔트호프 감독의 말대로 잠깐 한가해졌던 전시회장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인파로 가득 찼고, 언론사의 취재도 줄을 이었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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