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무기 쇼핑' 나선 인도네시아 고난도 밀당 전략
무기 구매 예산 연간 2조원 불과…비동맹 중립노선 활용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한국형 전투기(KF-21) 공동개발 분담금 8천여억원을 연체 중인 인도네시아가 프랑스, 미국산 '무기 쇼핑'에 나서면서 한국과 방산협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외교·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국방예산은 연간 10조원으로 한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 가운데 무기 구매에 쓰이는 예산은 연간 2조원에 그친다.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정부 예산 대부분을 팬데믹 대응에 전용하는 상황이어서 구매력도 여의치 않은 편이다.
하지만 비동맹 중립국이자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리더라는 외교적 위상과 인도·태평양 국가로서 남중국해 주변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적 대응으로 재정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은 2019년 9월 취임 후 미국과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무기 생산 국가들을 여러 차례 방문해 전투기와 잠수함 등 구매 의사를 피력하며 저울질을 계속했다.
두 차례 대선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맞붙었다 패배한 노련한 정치인인 그는 차기 대선의 유력 주자라는 점에서도 그의 행보에 적잖은 무게감이 실린다.
프라보워가 방문한 국가들은 대부분 저리의 차관과 기술이전을 약속하면서 어떻게든 인도네시아에 자국산 무기를 밀어 넣으려 하는 눈치다.
무기 수출국들로선 출혈 경쟁도 감수해야하는 처지다.
단순히 가격의 많고 적음을 떠나 경쟁 상대를 견제하고 수출 실적 쌓기를 통해 더 큰 많은 '파이'를 챙겨야 하는 전략적 계산 등 복잡한 셈법도 깔려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지난 10일 프랑스 항공·방산업체 다소에서 라팔 전투기 42대를 구매하기로 합의하고, 1차로 6대분 구매계약을 하는 한편 스코르펜 잠수함 두 척 구매 의향에 관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양측은 인도네시아가 어떻게 대금을 지불할지에 대해서는 함구했으나, 전문가들은 프랑스가 저리의 장기 차관을 제공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같은 날 미국 재무부는 F-15 전투기 36대와 엔진, 통신 장비 등 139억 달러(약 16조 6천억원) 규모의 대(對) 인도네시아 무기 판매안을 승인했다.
이에 대해 방산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가 F-35가 아닌 구형 F-15를 들여오기로 계약한다면 이는 미국 측이 기술이전 등 상당한 인센티브를 제시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역시 미국의 거센 반대를 뚫고 수호이 Su-35 전투기를 인도네시아에 무상으로라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가 예산상의 한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무기 구매를 놓고 '고도의 줄다리기'를 하는 면큼 한국 역시 심도 있는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일단 초미의 관심사였던 KF-21 공동개발 사업은 작년 11월 부담금 재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이 해소된 상태다. 주인도네시아 대사관 정연수 국방무관은 "KF-21은 2026년에 개발이 완료되는 만큼 인도네시아가 완제품 형태의 전투기를 들여오는 것은 KF-21 공동개발 사업과 분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가 프랑스산 잠수함을 실제로 구매한다면 오매불망 2차 사업 개시를 기다려온 대우조선해양에는 악재가 될 소지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1차로 1천400t급 잠수함 3척을 인도 받은 인도네시아는 2차 사업으로 2019년 3월에 3척(1조2천억원)을 추가로 주문했으나 지금껏 계약금 납입 등 아무런 이행을 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 스코르펜 잠수함은 척당 가격이 1조2천억원으로 턱 없이 비싼 데다 현재 인도네시아 해군이 독일산과 한국산 잠수함만 운용해온 만큼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인도네시아의 '무기 쇼핑'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는 "연체금도 안 주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신의가 없는 나라를 버리고 우리끼리 KF-21을 개발하자"는 등의 비판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산술적 계산만으로 판을 깨기에는 한국의 '최대 방산 우방협력국' 인도네시아가 갖는 비중과 의미를 무시할 수 없어 관련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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