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폐 도입시 통화정책 파급 효과 저하 우려"
한은 보고서…"도입하더라도 실제 발행까지 상당 시일 전망"
(서울=연합뉴스) 김유아 기자 =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통화정책의 파급 효과가 떨어지고 금융시스템의 리스크가 커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24일 발간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주요 이슈별 글로벌 논의 동향'에서 "CBDC 도입이 은행 예금을 대체하면 여러 부문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CBDC는 중앙은행이 일반 국민에게 계좌를 제공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화폐다.
2015년 이후 학계와 민간 부문에서 도입 논의가 시작돼 중국, 우크라이나 등이 시범운영하고 있으며 바하마, 동카리브, 나이지리아는 이미 도입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CBDC에 대한 연구와 모의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보고서는 먼저 CBDC가 예금을 대체하게 되면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CBDC가 도입되면 체크카드 등 직불카드와 신용카드, 인터넷뱅킹, 간편송금 시장 점유율을 잠식해버릴 수 있는데, 이런 서비스들은 통상 예금 서비스에 기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기 위해 CBDC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으로 자금을 옮길 수 있다.
특히 CBDC에 일정한 이자가 지급되거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 은행 예금에서 빠져나오는 자금의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대출 등을 취급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재원으로 기능하는 예금이 대거 빠져나가면 은행은 자금 조달을 위해 장기채 발행 등 시장성 수신의 비중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대출금리가 올라 대출과 투자 자체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금융시장 접근성이 낮은 소형 은행들이 사라져 은행업의 대형화가 가속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현재 은행 산업이 독점적인 특성을 보여 예금의 대체적 성격을 일부 지닌 CBDC 도입은 산업 내 경쟁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CBDC 보유 한도가 낮거나 이자율이 낮을수록 예금이 대체되는 정도는 미미할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됐다.
CBDC에 지급되는 이자율이 1.49%를 초과하지 않으면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은 약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학계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보고서는 은행 예금 감소는 궁극적으로 통화정책의 파급력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은행의 예금 감소로 고객의 자금 상태나 거래내역 등 신용공여 결정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량이 급감하면서 은행이 신용공급에 제약받을 경우 통화정책 효과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CBDC의 이자율을 산정할 경우 중앙은행의 정책이 경제 주체들의 소비와 투자에 미치는 힘이 세질 수 있다고도 꼬집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CBDC를 발행하더라도 이자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자는 통상 대출 등 금전 사용의 대가라서 화폐 그 자체에 이자를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법률적 견해에 근거한다.
실제로 CBDC를 도입한 국가들은 이자를 주지 않고 있다.
이밖에 은행이 예금 감소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상승에 대응하고자 고위험 대출과 투자를 확대하면 자산건전성을 떨어뜨리고, 시장성 수신 의존도를 높이면 금융기관 간 연계성이 커지면서 시스템 리스크가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됐다.
국제통화체제 측면에서는 주요국의 CBDC 도입이 해당 통화의 국제적 영향력을 더 키워, 신흥국이 자국 법정통화를 이들 통화로 대체하는 '통화대체'(달러라이제이션) 현상이 가속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CBDC가 은행 예금보다는 실물화폐를 대체하는 것이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면서 "금융안정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연구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모든 중앙은행이 CBDC를 도입할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려우며 실제 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현금 이용이 줄고 경제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는 등 이유로 주요국 중앙은행의 관련 연구와 도입 준비 작업은 상당 수준 진척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ku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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