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야당의원 "생존 北납치피해자 없다" 발언 비판 쏟아지자 철회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에서 이론을 제기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대표적인 인권침해 문제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다.
지난 4일 새롭게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올려놓고 있다.
기시다도 두 전임자와 같은 입장에서 모든 납치 피해자의 조속한 귀환을 실현하기 위해 조건 없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우부카타 유키오(生方幸夫) 의원이 금기를 깬 발언을 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우부카타 의원은 지난달 23일 지바(千葉)현 마쓰도(松戶) 시민회관에서 열린 국정보고회에서 납치 피해자를 상징하는 인물인 요코타 메구미(1977년 실종 당시 13세)가 "살아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폭탄성 발언을 했다.
그는 또 "납치 피해자가 현재로선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정치인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이 알려진 뒤 일본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납치피해자가족회'와 지원자들로 구성된 '구출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두 단체는 지난 11일 우부타카 의원의 발언이 "피해자 가족과 본인에 대한 중대한 모욕이자 모독"이라는 내용의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해당 발언의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아울러 입헌민주당 측에는 당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일본 인터넷 공간에서는 우부카타 의원과 입헌민주당을 비난하는 의견이 쏟아졌다.
오는 31일 예정된 중의원 선거(총선)를 앞두고 악재를 만난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는 "납치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당으로부터 엄중주의를 받은 우부카타 의원은 11일 저녁 트위터에 "공부가 부족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을 하고 말았다"며 깊이 반성하면서 문제 발언을 모두 철회한다는 취지의 사죄문을 올렸다.
그는 문제 발언의 책임을 지고 입헌민주당의 지바 현련(?連·지구당) 대표직에서도 물러났다.
이 소동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둘러싼 당사자 간의 엄청난 입장차를 새삼스레 보여준 사례로 눈길을 끌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1970~1980년대 실종된 일부 일본인이 북한으로 납치된 것을 말한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 총리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하지만 납치 인원과 피해자 생존 여부 등을 놓고 양국이 견해를 달리하면서 지금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거론하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은 12건에 17명이다.
이들 중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후에 일시 귀환 형태로 돌아온 5명을 제외한 12명이 미귀환 상태라는 것이 일본 정부 주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12명 중 납치 피해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히는 메구미를 포함한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북한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해결할 납치 문제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망했다면 납득할 증거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는 납치 피해자의 생존을 전제로 송환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대해 북한은 생존자가 없으니 해결할 문제가 없다고 맞서는 형국인 셈이다.
이 문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7년 8개월간의 제2차 집권 기간에 지속해서 거론한 과제였다.
아베의 뒤를 이은 스가 전 총리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계속 제안했지만 북한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북한은 올 2월 관영 조선중앙통신 논평으로 "일본이 그토록 떠드는 납치 문제는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다 해결돼 더는 논의할 여지조차 없다"며 납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납치 문제 해결을 중요 과제로 내세운 기시다 내각 출범한 후인 지난 7일에는 외무성 홈페이지에 올린 리병덕 일본연구소 연구원 명의의 글을 통해 같은 입장을 반복했다.
리 연구원은 이 글에서 "납치 문제는 2002년 9월과 2004년 5월 당시 일본 수상(총리)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그리고 그 후 우리의 성의와 노력으로 이미 다 해결됐다"며 여러 차례 진행된 북일 정부 간 회담과 접촉 때마다 일본 측에 알아들을 만큼 진지하게 설명해 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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