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새 대통령, 경제 문제 풀어야"…이란인들 대선 투표 '행렬'
핵협상·팬데믹 속 치러지는 대선…투표지 '손가락 도장'은 금지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이란 대선일인 18일 오전 8시께(현지시간) 수도 테헤란 중북부 미르다마드 지역 투표소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손에 쥔 스마트폰을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투표 차례를 기다리는 유권자의 모습은 여느 국가의 선거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여성들이 히잡 혹은 차도르(이란 여성이 머리부터 온몸을 가리는 망토 형태의 복식) 차림하고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향하는 모습이 이곳이 중동 국가임을 실감케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모스크를 이용한 이 투표소의 이름은 '호세이니에 엘샤드'로 이란 당국이 외신에 공개한 투표소 중 하나다. 투표소 인근 지역은 이란 중앙은행 등 주요 업무시설이 밀집한 곳이다.
화려한 페르시아 문양으로 장식된 투표소 건물 정문에는 군인 3명이 AK소총을 들고 경비를 섰다.
투표하는 부모를 따라온 어린아이 2명도 군복을 입고 이란 국기를 흔들었다.
군 폭발물 처리반(EOD)도 건물 내부 순찰을 하며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투표소 내부는 250㎡ 규모로 가장자리 4곳에 기표함이 마련돼 있었다.
유권자들은 신분 확인한 뒤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지지 후보 기호를 투표용지에 쓴 뒤 기표함에 넣었다.
가림막 속에 들어가 지지 후보가 적힌 용지에 도장을 찍는 우리나라 투표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란의 투표용지는 별도 동봉 없이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선거 참여 인증을 위해 자신의 투표용지를 찍는 행위도 허용된다.
자신의 투표용지를 들고 셀카를 찍는 여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투표지에 찍는 '손가락 도장'을 생략하기로 했다.
이날 투표를 한 나이메 피젤리(31)는 "이란을 위해 봉사하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극심한 경제난이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께 개혁파 후보인 압돌나세르 헴마티가 이 투표소를 찾았다.
좁은 공간에 취재진과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유권자가 뒤엉켜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았다.
투표소 선관위 직원 마흐디(22)는 연합뉴스에 "방역 수칙 아래에 투표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70% 수준밖에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거리두기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헴마티는 수십 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투표하고 별도의 인터뷰 없이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그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이 중동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고 역설했다.
국영방송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4.6%에 그쳤다. 강경보수 후보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사법부 수장(68.9%)의 지지율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라이시는 "제재를 풀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지만, 제재나 코로나19 같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방식으로 강화돼야 한다"면서 "또 이를 저해하려는 세력에 맞서는 데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라이시의 투표 장소는 외신에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헴마티 후보가 떠나자 투표소 앞에서는 그의 지지자와 라이시 지지자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헴마티 지지자들은 두 손을 하늘로 향해 뻗으며 "두르드(만세) 헴마티! 두르드 헴마티"를 연신 외쳤다.
이란은 에너지가 풍부하지만, 제조업의 원료나 부품을 수입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 후 이란 리알화 가치는 폭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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