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난 진정?…상승폭 둔화에도 "여전히 비싸다" 불만
부동산원 조사 1∼5월 주간상승률 0.13%→0.07%→0.04%→0.03%
반포동 등 이주수요로 전세불안 우려 나오자 정부 "사실 아니다" 진화
강남 고가·강북 중저가 전세 모두 신고가·최고가 수준 거래 여전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작년 하반기 이후 크게 뛴 서울의 전셋값이 최근 들어 진정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무주택 서민이 기댈 수밖에 없는 전세는 크게 뛴 값이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통계상 전셋값 상승 폭이 둔화했다며 '진정'을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정부는 전세 안정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 재건축 단지의 이주수요로 전세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서둘러 진화에 나서며 진땀을 뺐다.
◇ 통계상 서울 전세 진정세…강남발 전세불안 우려에 정부 서둘러 진화
18일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 상승 폭을 줄이며 진정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12월 주간 기준 상승률이 0.14∼0.15%까지 치솟은 뒤 올해 들어서는 1월 0.13%, 2월 0.07%, 3월 0.04%, 4∼5월 0.03% 수준으로 상승 폭을 줄이고 있다.
부동산원은 지난주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를 발표하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는 계절적 요인 등으로 전반적으로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으며 신규 입주 물량 영향 등으로 매물이 증가한 지역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별로 보면 지난주 양천구(-0.04%)는 5주 연속 전셋값이 내렸고, 종로구(-0.02%)는 3주 연속 하락했다.
강동구(-0.01%) 역시 2주 만에 하락으로 전환하는 등 약세로 돌아섰고, 마포·금천·중구는 보합(0.00%)을 기록하는 등 지표상 서울의 전세난은 진정되는 분위기다.
다만, 서초구의 경우 반포동 재건축 단지의 이주수요 등 영향으로 0.04% 오르며 전주(0.01%)보다 상승 폭을 키웠다.
일각에서는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를 비롯한 서초구 반포동 일대의 재건축 아파트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강남발 전세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부동산원 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감지됐다.
부동산원은 지난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한 차례 수정했는데, 수정 전 보도자료에는 "(서울 전세의 경우)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있거나 정주 여건이 양호한 역세권 등의 단지 위주로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반포동 등의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전셋값 상승의 기폭제가 될 것을 우려해 정부의 부동산 시장 안정 기조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공표 자료의 내용을 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역시 강남 재건축 단지발 전세 불안 우려가 언론을 통해 제기되자 서둘러 보도 참고자료를 내고 올해 강남권의 정비사업 이주수요는 작년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실제로 국토부 통계를 보면 올해 서울의 정비사업 이주수요는 약 7천637가구로 작년 2만4천708가구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강남 4구의 경우 약 4천251가구로 작년(8천348가구)의 절반 수준이다.
◇ "전세 진정" 설명에 임차인 '반감'…"전셋값 여전히 비싸고 최고가 거래도"
국토부의 설명과 부동산원의 통계를 보면 서울 전세가 안정되고 있으며 상승 우려가 기우로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설명과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특히 내 집 마련 기회를 놓치고 전세살이를 하는 입장에서는 크게 뛴 전셋값이 거의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안정', '진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마포구 아현동에 전세로 사는 이모(36)씨는 "나도 그렇고 내 주변에 전셋값이 1년도 안 돼 2억∼3억원씩 올라 죽겠다는 사람이 널렸는데, 정부가 통계상 전셋값이 더디게 오른다고 안정됐다는 식으로 말하면 울컥하고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전셋값이 수천만원씩 내린 곳도 있지만, 최근까지도 최고가 수준에 전세 계약을 맺거나 신고가로 거래한 사례도 확인된다.
고가 전세가 많은 강남권을 살펴보면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면적 84.94㎡의 경우 이달 8일 보증금 17억원(6층)에 전세 계약서를 써 역대 최고 가격에 거래됐다.
이는 나흘 전인 4일 보증금 7억6천650만원(18층)에 거래된 것과 2.2배 차이가 났다. 7억6천650만원은 7억3천만원에서 5%를 인상한 금액으로, 이 전세 갱신 계약임을 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2년 사이 전셋값이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119.89㎡도 지난달 16일 보증금 10억1천850만원(22층)에 이어 30일 보증금 20억원(7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져 보름여 만에 10억원 가깝게 차이 나는 거래가 이뤄졌다.
재건축 단지 중에서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76.79㎡가 이달 10일 보증금 8억5천만원(4층)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기존 최고 가격인 9억원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2년 전 5억원 안팎에 계약했던 임차인들에게는 부담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76.5㎡ 역시 이달 3일 보증금 7억5천만원(7층)에 계약서를 써 일주일 뒤 계약된 3억5천700만원(13층)짜리 전세 계약과 2배 넘게 가격 차이가 났다. 3억5천700만원은 3억4천만원에서 5%를 인상한 금액과 같다.
저렴한 전세가 많아 주거비 걱정이 적던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 외곽 지역에서도 신고가 거래가 확인된다.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 59.76㎡는 이달 10일 보증금 4억원(18층)에 신고가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작년 5월 2억5천만원에서 1년 사이 1억5천만원 오른 것이다.
강북구 미아동 꿈의숲롯데캐슬 84.98㎡도 지난달 15일 보증금 6억7천만원(11층)에 최고가로 계약됐다. 작년 상반기까지 5억5천만원 이하에서 거래되다가 12월 6억3천만원(9층)으로 오른 뒤 올해 1월 6억5천만원(1층), 지난달 6억7천만원(11층) 등 잇따라 최고가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구로구에서는 신도림동 대림e편한세상5차 84.79㎡가 지난달 28일 보증금 8억원(15층)에, 금천구에서는 시흥동 우방아파트 114.89㎡가 이달 10일 보증금 6억원(12층)에 각각 최고가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전셋값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임차인의 시름도 깊다. 최근 계약을 갱신한 경우라도 2년 안에 전셋값이 크게 내리지 않는다면 조만간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
성동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회사원 김모(37)씨는 "정부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계약을 연장하면 2년 더 안정적인 주거가 가능하다고 얘기하는데, 그 말이 당장은 맞지만, 2년 뒤엔 오른 전셋값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전세가 안정됐다고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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