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환자 늘어선 병원 밖 난민수용소 방불…무너진 印의료망
확진자 폭증에 병상 못 구해 '발동동'…약국에도 인파·치료제 품귀
봉쇄령 발동에 사재기 행렬…일부는 여전히 '노마스크' 방역 무신경
교민 사회도 공포감…기자 거주 동네 환자만 210명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19일 오후 인도 최대 국립병원 중 한 곳인 뉴델리 사프다르정 병원.
병원 건물 밖은 전쟁터의 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환자 수십 명은 노천에서 철제 간이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가족들이 자리를 깔고 환자를 돌봤다.
환자 대부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이들이었다. 확진 판정을 받고 상태가 나빠져 급하게 병원을 찾았으나 병상을 구하지 못해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남성 라지 조시는 "가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하지만 병상이 없어서 이렇게 건물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인구 2천만명인 인도 수도 뉴델리의 의료 체제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쓰나미'로 사실상 붕괴 위기에 처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100명 수준이었던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2만5천명안팎으로 폭증하자 병원마다 밀려드는 코로나19 환자로 몸살이다.
뉴델리 내 중환자용 병상은 총 4천412개인데 현재 빈 병상은 50개 정도에 불과할 정도다.
아르빈드 케지리왈 델리 주총리는 이날 "델리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이 병원 밖 약국들도 밀려드는 인파로 아수라장이었다.
의료 체제가 무너지면서 렘데시비르 같은 코로나19 치료제는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현지 언론은 렘데시비르가 불법 시장에서 시가의 5∼6배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이 통제 불능 상황으로 치닫자 뉴델리 당국은 이날 밤 10시부터 26일 오전 5시까지 봉쇄령을 내리기로 했다.
뉴델리에 평일 봉쇄 조치가 도입되는 것은 지난해 3월 전국 봉쇄 이후 13개월 만에 처음이다. 뉴델리 대표 상징물인 인디아 게이트 등 주요 관광지나 대형 쇼핑몰은 이에 앞서 이미 문을 닫았다.
갑작스러운 봉쇄령 발동 소식에 주민들도 동요했다.
곳곳에서는 식품을 미리 사두기 위한 사재기 행렬이 이어졌다.
당국은 봉쇄 기간에도 식료품 배달 등은 허용하겠다고 했지만 불안한 주민들은 상가로 달려갔다.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뉴델리 시내 대형 INA마켓에서는 상가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도로까지 길게 줄을 섰다.
결국 상가에 진입하지 못하고 차를 돌린 마노지 쿠마르는 "평일 오후에는 이곳 주차장이 한산한 편인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며 "사람들이 봉쇄 소식에 앞다퉈 물건을 사러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시내 여러 주류 상점에도 사재기에 나선 주민으로 길게 줄이 만들어졌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주민의 해이해진 방역 태세가 이번 확산세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색의 축제' 홀리, 힌두교 축제 '쿰브 멜라' 등에서는 수많은 인파가 마스크 없이 밀집했다. 웨스트벵골 주 등에서 진행 중인 지방 선거 유세장에도 연일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
이 과정에서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확산 상황이 이처럼 심각하지만, 시내 곳곳에서는 여전히 방역에 무신경한 주민 모습이 눈에 띄었다.
'노마스크' 주민에게는 당국이 2천루피(약 3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외부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의 비중은 절반 정도에 불과해 보였다.
그나마 '턱스크'나 조잡한 천 입 가리개를 제외하면 제대로 마스크를 한 이들은 전체 주민의 10∼20%밖에 안 되는 듯했다.
시내 빈민가 여러 곳을 들러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봤다.
그곳 주민 상당수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밀집한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완전히 무시됐다.
거리에서 만난 디네시 라이는 "우리는 코로나19가 위험하다고 믿지 않는다"며 "코로나19는 사실 감기와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인도인은 과학보다는 종교를 더 믿는다"며 "또 우리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19는 신경 쓰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까지 주말 통행금지가 발동됐고 곧 6일간의 봉쇄에 돌입하는 상황이었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차가 많았다.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북부 올드델리와 시장 인근은 특히 혼잡했다.
이날 뉴델리의 대표적 이슬람 사원 자마 마스지드 앞 시장과 인근 도로는 차량과 3륜 택시(오토릭샤), 오토바이 등이 뒤엉켜 극심한 정체를 빚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교민 사회도 불안해하고 있다.
기자가 거주하는 동네의 확진자(누적 아닌 현재 감염자) 수도 210명을 넘어섰다. 뉴델리 남부에 자리잡은 이 주택가는 6개 단지로 이뤄졌다.
교민이 많이 사는 뉴델리 인근 구루그람(옛 구르가온)의 한 아파트에서도 약 30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교민들은 감염돼 상태가 나빠질 경우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실제로 전날 50대 한국 교민 남성이 코로나19에 걸려 치료받던 도중 사망했다. 인도에서 교민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남성은 입원 후 호흡 곤란 등 상태가 악화했지만 중환자실 병상을 뒤늦게 확보하는 바람에 치료시기를 놓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민은 "작년 1차 유행 때보다 더 걱정된다"며 "어린이 감염자가 많이 나오고 있고 전파 속도도 훨씬 빠른데다 작년과 달리 고급 민간 병원에조차 빈 병상이 없어서 공포감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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