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정부, '미국 평화협정 촉진안' 사실상 거부
탈레반과 평화협상 교착에 미국, 포괄적 회담 등 제안
부통령 "우리가 아프간 운명 결정"…과도정부 설립안에도 반발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제안한 '평화협정 촉진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아프간 정부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간의 평화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바이든 정부가 새로운 포괄적 회담과 과도 정부 설립 등을 제안하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9일 톨로뉴스 등 아프간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암룰라 살레 아프간 제1부통령은 전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미국의 제안에 대해 "우리에게는 3천500만 아프간 국민에 대한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살레 부통령은 "미국의 지원은 감사하지만, 그들은 (아프간에 남은) 2천500명의 병력에 대한 결정권만 갖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놓고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외부 세계에 의존한다고 해서 법에 어긋난 요구에까지 순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톨로뉴스 등은 7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평화협정 촉진을 위한 여러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수주 내에 터키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어 앞으로 90일간 물리적 충돌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토록 제안했다.
그는 또 평화협정 재가동을 위해 아프간과 탈레반이 유엔 회의를 통해 협정을 논의토록 했다. 이 회의에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이란, 인도 등 관련 당사국의 외무 장관도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블링컨 장관은 미군이 5월 1일까지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방안도 여전히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해 2월 탈레반과 평화합의를 통해 14개월 내 미군 등 국제동맹군 철수를 약속했지만 최근 탈레반의 공세가 강화되자 성급하게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은 이번 편지에서 '예정대로' 미군이 철수할 수 있으니 아프간 정부는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 지으라고 압박한 것이다.
톨로뉴스 등은 미국이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에 과도정부 설립 등의 내용을 담은 별도의 평화합의 초안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정부 측은 이같은 과도정부 설립안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니 대통령은 최근 탈레반까지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권력이 이양돼야한다며 "내가 살아있는 한 과도정부는 구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프간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8일 로이터통신에 "(선거가 생략된 채) 회담이나 정치적 협상을 통한 과도정부 설립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배후로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탈레반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동맹국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이후 아프간에 친서방 정권을 수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탈레반이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와중에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지난해 9월부터 사실상 처음으로 공식 평화협상을 시작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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