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응 주저하다 고이케 도쿄지사에 기습당한 스가
'긴급사태 선언' 공개적으로 요구…스가 '어려운 선택' 봉착
묵살 후 심각해지면 책임론…수용 시 경기에 영향·주도권 뺏길 수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경기 위축을 우려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사에게 일격을 당한 양상이다.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가운데 고이케 지사 등 수도권 4개 광역자치단체장이 2일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 재생 담당상을 만나 긴급사태 선언을 신속히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형식상 요청이지만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주도권 다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스가 정권을 기습한 셈이다.
스가는 경기 부양을 중시해 긴급사태 선언과는 거리를 뒀으며 여행장려 정책인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일시 중단도 마지못해 결정했다.
고이케 등의 긴급사태 선언 요청에 관해 "정부 측과 사전 조율을 했다는 흔적이 엿보이지 않으며 갑작스러운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고 3일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분위기를 전했다.
고이케가 여론을 업고 공개적으로 내각을 압박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스가 총리 주변에서는 "고이케 씨는 교활하다. 쓸 수 있는 대책을 쓰기 전에 갑자기 정부에 '긴급사태 선언으로 그물을 쳐주면 좋겠다'고 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재임 중이던 작년 4월 7일∼5월 25일 일본의 일부 또는 전역에 긴급사태를 발령했는데 당시 신규 확진자는 하루 평균 255명 수준이었다.
긴급사태 종료 후 한동안 하루 두 자릿수를 유지했던 신규 확진자 수는 올해 여름부터 긴급사태 수준을 넘어섰고 최근에는 하루 3천 명대로 긴급사태 때의 10배를 넘었다.
확진자 수로 본다면 진작 긴급사태를 선언했어야 하지만 앞서 긴급사태가 경기에 얼마나 충격을 주는지를 지켜본 스가 총리는 경기 부양과 방역을 병행하는 정책을 고집했다.
스가 총리가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감염을 증가시킨다는 증거가 없다'며 고투 트래블을 강행한 점에 비춰보면 긴급사태는 그가 애초에 순위권 밖에 둔 선택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확진자 증가 속도가 2개월 이상 현저하게 빨라지고 의료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하기 시작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고이케 지사가 공개적으로 결단을 촉구한 셈이다.
니시무라 담당상에게 의견을 전달했으나 긴급사태 발령권자가 총리인 점을 고려하면 스가에게 공을 넘긴 셈이다.
스가 총리는 꽤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으로 보인다.
확진자가 연일 급증하고 의료 종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에서 긴급사태 재발령 요구를 거절했다가 상황이 더 악화하면 책임 논란에 봉착할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불만 때문에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정권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요청을 수용해 긴급사태를 다시 선언하면 스가가 중시하는 경기 부양에 당장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또 코로나19 대책에서 지자체에 끌려다니는 듯한 인상을 줄 가능성도 있다.
니시무라 담당상은 2일 고이케 등과의 면담에서 긴급사태 발령 요청을 검토하겠다면서도 음식점 영업시간 단축 요청 등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실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긴급사태 재선언 요청에 관해 "전문가의 판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하는 등 정권에 가해지는 압박을 분산하기 위해 애썼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