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 내몰린 정유 4사, 일제히 수소 충전 사업 '저울질'
현대차와 수소 상용차 충전 인프라 SPC 설립 검토
그린 뉴딜 발맞춰 주유소 적극 활용…"시기상조" 의견도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정유업계가 적자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면서 경쟁 상대로 여겨졌던 수소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전환 가속화와 정부의 '그린 뉴딜'에 발맞춰 신사업 기회를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수소 충전 사업 뛰어드는 정유 4사
13일 업계와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는 현대자동차[005380]와 함께 수소 상용차 충전 인프라 관련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연초 산업통상자원부의 제안으로 논의를 시작해 각사별로 타당성을 조사해왔으며 이르면 연내 업무협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SPC 설립 시점은 내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주요 사업 내용은 수소 트럭, 수소 버스 등 상용차 충전 인프라 구축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는 정제과정에서 수소 생산이 가능하고 기존에 다루던 제품과 유사한 성질의 수소를 유통하는 것이어서 매력적인 사업"이라며 "4사 모두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그린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수소충전소를 지속 확대해 오는 2025년까지 총 450개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발맞춰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수소 충전 사업을 구체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현재 실제 가동 중인 수소 충전소는 GS칼텍스와 현대차가 협업해 5월 준공한 서울 강동구 '융복합에너지스테이션'으로 하루 평균 수소차 50대(8월 기준)가 왔다 간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정부 수소 경제 활성화 정책에 맞춰 수소 충전시설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SK에너지도 올 11월 가동을 목표로 평택시에 수소충전소를 구축하고 있으며, 지난 7월 '수소물류얼라이언스' 참여도 공식화했다.
국토부는 수소물류얼라이언스를 통해 군포 물류단지 등 물류 거점에 수소 화물차 충전소를 설치하고 연료 보조금 지원방안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에쓰오일의 경우 서울시와 협의해 마곡 연구소 부지에 수소 충전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수소경제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기존 주유소 인프라를 활용해 수소충전소를 2025년 약 80개소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정부의 수소 충전소 설치 계획이 현실화한다는 가정하에 목표를 잡은 것"이라며 "아직 구체화한 건 없다"고 설명했다.
◇ 정유사의 수소 충전소, 전환점 될까
업계에서는 정유 4사의 최근 행보가 수소 생태계 확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수세적인 모습을 보여오던 정유사들도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며 "수소 산업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익성 면에서 아직 수소 산업에 뛰어들기에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유 업계에 따르면 수소 충전소를 건설하는 데 통상 30억원 가까이 소요되고 부지를 제외하고 설비만 들여오는 것도 평균 20억원이 든다.
이렇게 계산하면 현대오일뱅크가 2025년까지 수소 충전소 80개소를 짓기 위해선 4년간 매년 600억원가량을 쏟아부어야 하는 셈이다.
더군다나 수소차가 얼마나 늘어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소 산업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려면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올해 2분기에도 정유사들은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하면 모두 적자를 기록했고, 정제마진은 지속해서 마이너스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정유사들이 최근 잇따라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하며 '수소 공급자'로 거듭났다는 점은 긍정 요인이다.
남는 수소가 없던 기존 사업 환경과 달리 수소의 생산량을 늘려 수소충전소 수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모빌리티 연료가 기름에서 전기, 수소로 확대되고 있다"며 "글로벌 트렌드와 정부 정책에 따라 미래 시장 우위를 점하려면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cui7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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