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현산에 최후통첩…망한 미국회사에 빗대 압박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일축, 대면 협상 불응에 '불쾌감'도 여전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 불발 시 모든 책임이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이하 현산)에 있다며 현산에 강공을 날렸다.
투자 판단을 잘못해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파산한 미국 체인점 업체 '몽고메리 워드' 사례를 거론하며 현산에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압박도 가했다.
아시아나항공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어 현산에 최후통첩성 메시지를 보냈다.
채권단은 진정성 없는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요구가 과도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고 인수 무산 시 책임을 현산이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것이 간담회의 핵심 내용이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계약 무산의 법적 책임은 현산에 있다"며 "현산이 계약금 반환 소송은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채권단은 지난달 러시아를 끝으로 해외 기업결합신고가 끝나 거래 종결을 위한 선행 요건이 충족된 만큼 인수 계약을 마무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002990]과 아시아나항공이 현산 측의 자료 요구 등에 충실히 응했기에 현산이 요구하는 12주간의 재실사는 필요 없다는 것이 채권단의 입장이다.
현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이 직격탄을 맞은 점 등으로 인해 지난해 12월 계약 당시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 점 등을 거론하며 재실사를 요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수 환경이 달라진 점은 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후 충분히 논의하면 될 문제라며 채권단은 맞섰다.
수차례의 대면 협상 요구에 현산이 한차례도 응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채권단의 '불쾌감'은 여전했다.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간담회에서 "수많은 인수·합병(M&A)을 경험했지만, 당사자 면담 자체가 조건인 경우는 처음"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면 협상'이 아닌 '서류 공방'은 현산의 인수 의지 진정성에 의구심을 더하는 것으로 결국 채권단이 인수 불발에 대비한 '플랜B'까지 대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코로나19 상황에서 다른 인수 주체가 마땅하지 않은 점은 채권단의 고민거리다.
이 때문에 채권단은 현산을 강하게 압박하면서도 인수 성사를 위한 마지막 희망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회장이 간담회에서 미국 리테일 업체 몽고메리 워드와 시어스를 거론한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 회장은 "1945년 미국의 리테일 산업에서 몽고메리 워드와 시어스의 운명을 갈라놓은 사건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두 회사가 어떤 판단을 해서 한 회사(몽고메리 워드)는 쇠락의 길을, 다른 회사(시어스)는 이후 30∼40년간 전 세계 리테일을 평정하는 대기업으로 거듭났는지를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몽고메리 워드와 시어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상반된 투자 전략을 폈다.
몽고메리 워드는 참전 용사들이 실업자가 돼 공황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를 가능한 줄이는 경영 전략을 짰으나 시어스는 은행 대출을 통해 교외로 사업을 확장하며 수요 증가에 대비했다.
전후 미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고 큰 타격을 입은 몽고메리 워드는 쇠락의 길을 걷다 결국 지난 2000년에 파산했다.
뉴욕타임스는 '20세기 최악의 실수와 판단 착오' 12개 가운데 몽고메리 워드의 판단착오를 꼽기도 했다.
이 회장이 몽고메리 워드를 거론한 것은 장기적인 안목이 아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일시적인 어려움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판단은 결국 현산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kong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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