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봉쇄령 넉달 남아공, 마스크 의무화 '만시지탄'
값싸고 효율적 대책인데 최근에야 단속…세계 5위 감염국에 행정력 의구심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위반시 최고 6개월 실형'이라는 엄벌 의지를 밝혔다.
남아공은 그동안 마스크 쓰기를 권장해왔지만, 위반자에 대해 벌금과 함께 징역형 방침까지 밝힌 것은 감염자 수가 영국까지 앞질러 세계 10위권 내로 들어선 이후다. 23일(현지시간) 현재 남아공 확진자는 40만명에 육박하며 일주일 가까이 세계 5위 감염국가다.
◇ 초기 방역모범국에서 '코로나19 상임이사국(P5)' 전락
일각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최다 발병 5개국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P5)에 빗대, 초기 방역 모범국이라던 남아공도 '코로나19 P5' 일원이 됐다고 자조적으로 얘기했다.
남아공은 일찍이 지난 3월 말부터 술과 담배 판매까지 금지하는 세계 최강의 봉쇄령 가운데 하나를 시행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엄격한 현대판 '청교도 국가'가 된 셈이다.
술은 지난 6월 들어 판매 재개를 허용했다가 최근 음주 교통사고와 범죄 증가 등을 이유로 지난 13일부터 다시 판매를 금지했다.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음주 관련 환자들이 병상을 차지하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24일로 120일째를 맞는 봉쇄령의 당초 취지는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하기 위한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남아공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자리한 수도권 하우텡주에 병상이 부족하다느니, 농촌지역인 이스턴케이프주에선 앰뷸런스에 실려 온 코로나19 환자가 수 시간 째 구급차 안에서 대기하다 귀가했다는 보도가 있는 걸 보면 과연 제대로 준비를 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남아공은 무엇보다 봉쇄령으로 인해 1945년 이후 최장의 불황을 겪는 등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정작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효율적 대책인 마스크 쓰기를 이제야 의무화하고 강력한 단속 의지를 밝힌 것은 아이러니다.
◇엄격한 마스크 착용 단속 이뤄지지 않아
그렇다고 현재 엄격한 마스크 착용 단속이 이뤄지는 것 같지도 않다.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에선 마스크를 안 쓰는 경우가 아직도 상당하다고 한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서 사업을 하는 김맹환 남아공 한인회장은 "사람들이 거리에선 단속 때문에 마스크를 쓰곤 하지만 직장 근무 중에나 빌딩 주거지에선 잘 안 쓰고 있다"면서 "흑인 직원들한테 채근하면 그때서야 겨우 쓰고 '난 상관 없어요'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요즘 사람간 전파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남아공 정부가 한 사람이라도 감염자를 막기 위해 행정력을 신속하게 동원한다고 보기 어려운 모습이 보인다.
단적인 예가 우리 대사관에 와 있는 마스크 기증분 3만5천장과 세정제 1.2t분이다.
도착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남아공 보건부에 전달도 못 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증식과 관련한 보건부 장관의 일정이 바빠서 그랬다고 한다.
◇ 한 사람이라도 빨리 구하려는 행정력에 의구심
지금은 물자라도 먼저 남아공 측에 전달하려고 해도 "의료품 등록 절차를 밟고 있어서 당장은 어렵다"고 실무진에서 답한다고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삼성전자가 지난 18일 기증했다고 밝힌 진단키트 1만명분에 대한 홍보자료 배포 조율도 남아공과 무려 석 달 가까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그마나 진단키트는 지난 5월 하순에 전달했다고 한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마스크를 쓴 사진을 걸어놓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지난 2월 요하네스버그에 한 회사 주재원으로 왔던 한 교민 청년은 당초 결혼해 여기에 정착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사표를 내고 귀국길에 올랐다.
남아공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이 미덥지 못한 것도 그 같은 결정에 한몫했다고 한다.
발병 초기 발빠르게 봉쇄령을 도입해 안팎에서 칭찬받았던 남아공 정부는 세계 5위 감염국가가 된 지금 '이것도 정부냐'는, 오히려 더 큰 시험대에 놓여 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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