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 시대…대만에 '홍콩 망명객' 밀려드나(종합)
작년 6월부터 수백명 망명…대만, 홍콩인 정착지원 조직 가동
'중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이미지 부각하는 차이잉원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훼손 논란에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강행한 가운데 대만 정부가 신변에 불안을 느끼는 홍콩인들의 이주를 적극 돕겠다고 나서면서 대만이 홍콩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선택지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홍콩보안법이 발효된 6월 30일 페이스북 계정에서 7월 1일부터 홍콩인의 이주를 돕는 공공 조직인 '대만홍콩서비스교류판공실'이 문을 연다고 예고하면서 "대만은 정부와 민간을 가리지 않고 함께 협력해 홍콩 인민에게 최고로 굳건한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타이베이(臺北)에 이날 문을 연 대만홍콩서비스교류판공실은 대만에 이주하고자 하는 홍콩인들에게 취학, 취업, 이민, 투자 등 문제와 관련해 원스톱 상담 및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대만 정부가 이 조직을 만든 주된 목적은 정치적 이유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홍콩의 민주 진영 인사와 시위 참여자들의 대만 이주를 돕기 위한 것이다.
홍콩에서는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서 많은 민주 진영 인사와 그간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체포돼 가혹한 형사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가인 조슈아 웡이 속한 정당 데모시스토가 홍콩보안법 시행 직전 해산을 결정한 것은 민주화 인사들이 느끼는 공포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웡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홍콩보안법이라는 악법 통과와 인민해방군의 '저격 훈련' 공개 등 홍콩의 민주 진영은 이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이미 작년부터 적지 않은 대만의 민주 진영 인사들이 대만행을 선택했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작년 6월부터 홍콩 시위대 수백명이 이미 대만으로 망명했다. 이들 중에는 친구와 가족까지 모두 대만으로 거처를 옮긴 이들도 있다.
'대니얼'이라는 가명을 쓰는 망명객은 작년 홍콩 입법회 점거 농성을 벌인 이후 대만으로 왔다. 그는 현재 대만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
대만 정부의 이번 결정은 그간 개별 사례 중심으로 진행되던 홍콩 인사들의 대만 이주를 더욱 체계적, 조직적으로 돕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에서 중국이 지정한 금서를 팔던 코즈웨이베이 서점을 운영하다가 중국 본토로 끌려가 강제 구금됐던 람윙키(林榮基)씨도 작년 대만으로 '망명'을 했다.
그는 지난 4월 타이베이(臺北)에서 홍콩에서 운영하던 서점 이름을 그대로 따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문을 다시 열었다. 차이 총통은 직접 이 작은 서점을 방문해 람씨를 만나 격려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적 망명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홍콩인들의 대만 이민도 급증하는 추세다.
작년에만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 시민은 5천858명으로 2018년 4천148명보다 41.1% 급증했다. 대만은 600만 대만달러(약 2억5천만원) 이상 투자해 현지인을 고용하면 영주권을 줘 이민 문턱도 낮은 편이다.
대만 독립 지향 성향의 차이 총통은 작년 6월 홍콩의 대대적인 민주화 요구 시위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적극적으로 홍콩 지지 의사를 표명해왔다.
차이 총통은 '중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대만을 지키며 중국 본토의 '전제 통치'에 단호히 맞서는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홍콩 사태를 계기로 중국이 대만에도 강력히 요구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통일 방안에 대한 거부감이 급속히 커지면서 차이 총통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을 일거에 회복하고 지난 1월 대선에서 압승을 거둬 연임에 성공했다.
차이 총통의 '정치공학적'인 이해득실 여부를 떠나 대만 사회 전반에서 반중 정서가 크게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들어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1인 통치'가 굳어지면서 1980년대 후반 이후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대만에서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커졌다.
탈중국 성향의 차이 총통 집권 이후 중국이 대만에 외교·군사·경제 등 다방면에서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한 것도 대만인들의 반감만 크게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작년 6월부터 시작된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사태는 "홍콩이 대만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을 대만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었다. 당시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뜻의 신조어인 '망궈간'(芒果乾)이 대만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망궈간'은 원래는 '말린 망고'라는 뜻인데 중국어 발음이 '망국감'(亡國感)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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