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가져온 선물…'잊힌 태국 참전용사' 30명 생사 확인
마스크 배포 계기로 태국측 명단 513명 받아 등기우편으로 한달간 확인
90대 참전용사·유가족 "70년 전인데 관심에 감사·자부심 느껴" 편지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한국 정부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마련한 마스크가 태국 내 '잊힌 참전용사'들을 찾아내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18일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대사관 무관부는 약 한 달 전부터 태국 내 6·25 참전용사들에 대한 생사 확인 작업을 진행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가 전 세계 22개국 참전용사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배포한 마스크 100만장 중 일부를 태국 내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태국은 6·25 전쟁 발발 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참전했다.
전쟁 기간 태국군은 6천326명이 참전해 136명이 전사하고 1천139명이 부상했으며 5명이 실종됐다.
◇ 태국측 명단 '유명무실'…한 달 동안 등기우편 확인 작업
대사관 무관부는 자체 보유 참전용사 명단 434명 중 생존자 179명 및 사망자 255명의 유가족에게 지난달 중순 코로나19 마스크를 전달했다.
그러나 무관부가 보유한 명단에 없는 다른 참전용사들에게 어떻게 마스크를 전달할지가 문제였다.
태국 보훈처와 참전협회 등으로부터 참전용사 513명의 주소나 전화번호 등 연락처를 받긴 했지만, 업데이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했기 때문이었다.
이 명부로는 이들이 해당 연락처에 살고 있는지는 물론이고, 생존 여부도 알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무관부는 해당 연락처로 등기 우편을 보내 한국 정부의 감사 편지와 함께 참전용사가 사는 주소지가 맞을 경우, 동봉한 참전용사 등록 신청서를 등기우편으로 회송해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째 진행 중인 확인 작업 과정에서 전날까지 약 100통이 주소지 불명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참전용사 또는 그 유가족 및 후손들이 보낸 회신 우편 30통도 무관부에 도착했다.
◇ "70년 전 참전한 우리를 기억해 줘서 감사하고 영광스러워"
이 중 일부는 회송 우편 편에 70년 전의 일인데도 한국 정부가 아직도 참전용사들을 기억해 주고 있다는 점에 놀라고 감동했다는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장교로 참전했던 쁘라딧 러씬(93)씨는 편지에서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셔서 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다 너무 기쁘고 대단히 감사드린다"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철의 삼각지대 전투·폭찹 힐 전투 그리고 한강 다리가 무너진 장면 등 한국의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7년 참전용사 초청 행사에서 당시 미국 전우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면서 "대한민국의 옛날 모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잘 살고 발전돼 멋진 나라가 된 것을 보고 크게 성공한 나라임을 인정했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이 된 참전용사 차오 감탄야웡의 아들인 차이윳씨는 편지에서 "70년이 흘러 만나 본 적도 없는 참전용사 및 유가족을 잊지 않은 편지를 받아 6·25 참전용사의 아들·딸, 손자·손녀 그리고 친척으로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버님도 생전 한국전, 한국 국민, 처음 본 눈, 그리고 매서운 추위 등 한국전 경험을 자주 얘기해주시고 기회가 되면 한국을 다시 찾고 싶다고 하셨다"면서 "아쉽게도 세상을 떠나셔서 재방문을 못 하셨지만, 6·25 참전용사 후손으로서 정말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간호병으로 참전했던 분셉 럿삼루어이의 손녀라고 소개한 어라눅 뜨리테위는 "할머니는 94세로 현재 알츠하이머병으로 치료 센터에 계신다"면서 할머니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 (마스크 수령) 지원서를 채울 수 없어 주민등록증 및 참전용사 카드를 대신 보냈다.
손녀는 그러면서 "오래된 일인데도 아직 기억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존경한다"고 덧붙였다.
대사관 무관부는 아직 반송되지 않은 300여통의 등기 우편을 통해서도 추가로 참전 용사들의 생사가 더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태국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박광래 대령은 "참전용사들을 찾으려는 노력이 성과가 더뎌 부끄러운 마음이었지만, 마스크 배포를 계기로 '잊힌 영웅'들의 생사를 알게 돼 다행스럽다"면서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out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