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코로나 긴급사태 빌미 기본권 제한 가능 개헌 의욕
"국난 극복 헌법에 어떻게 반영하느냐는 매우 중요"
아베, 국회에 긴급사태 선언 보고하면서 개헌 발언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7일 국회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사태 선포를 보고하면서 긴급 시기에 대응하기 위한 헌법 개정 논의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중의원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국가와 국민이 어떤 역할을 하면서 국난을 극복해야 하는가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무겁고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그는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도 근거로 하면서 국회 헌법심사회의 장에서 여야의 틀을 초월한 활발한 (개헌) 논의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개헌을 언급한 것은 자민당이 추진하는 개헌안에 포함된 긴급사태 조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자민당 헌법개정추진본부가 2018년 3월 내놓은 개헌안을 보면, 지진 등 대규모 재해가 발생해 국회의 입법 절차를 거칠 여유가 없는 경우 내각이 법률과 사실상 비슷한 효력을 가진 '정령'(政令)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사태 조항이 포함돼 있다.
특히, 2012년에 자민당이 내놓은 개헌 초안에는 긴급사태가 선언되는 경우 누구든지 신체, 재산을 지키기 위한 조치와 관련해 발령되는 국가나 공공 기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자민당의 개헌안에 반영된 긴급사태 조항은 위기 상황을 빌미로 국민의 기본권과 의회의 견제 기능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야당 등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해 아베 총리도 지난달 14일 기자회견에선 긴급사태 선언이 가능한 특별조치법 개정을 계기로 자민당 개헌안에 포함된 긴급사태 조항을 도입하려 하며, 이를 통해 '아베 독재'가 가능해진다는 우려에 대해 "우리가 독재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것(특별조치법)과 자민당 개헌안은 완전히 별개"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런데 실제 긴급사태 선언이 임박해지자, 아베 총리의 태도는 돌변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명분으로 긴급사태 조항을 포함한 개헌 논의를 사실상 촉구하고 나선 셈이다.
그는 올해 추진할 핵심 국정 과제로 개헌 문제를 제시했지만 모든 이슈를 압도하는 코로나19 확산에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상태였으나 재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의도대로 일단 개헌 논의가 물살을 타면 이른바 평화 헌법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민당 개헌안에는 긴급사태 조항 외에도 자위대의 존재를 반영하도록 헌법 9조를 개정하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아베 총리도 수차례에 걸쳐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자'고 주장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는 "아베 총리가 긴급사태 선언을 하면서 헌법 개정을 함께 거론한 것 자체가 개헌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이번 코로나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특별조치법에 따른 긴급사태를 선언해도 강제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헌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아베 총리의 주장이라고 이 교수는 해석했다.
이 교수는 "(자민당의 주장처럼) 국회의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각의(閣議·국무회의) 결정인 정령으로 긴급사태에 대한 조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과거 임시 각의 결정으로 '집단적 자위권' 해석을 변경한 것 등의 사례로 볼 때 매우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코로나19 정부 대책본부 회의에서 도쿄도(東京都)와 오사카부(大阪府) 등 7개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특별조치법에 근거한 긴급사태를 선언할 예정이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