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 건너 불' 일본인들 감염경로 불명 환자에 '공포감'
일본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에 긴장감 고조…곳곳 마스크 품절
20대 회사원 "나도 걸릴 수 있다는 생각 들어 무섭다"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스미마셍(미안합니다)! 스미마셍!"
17일 출근길에 들른 한 편의점 직원에게 마스크를 언제 살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듯이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감염 경로를 파악할 수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일요일인 16일까지 일본 후생노동성이 집계한 일본 내 코로나19 환자 수는 414명이다.
일본 정부가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며 승선자들을 내리지 못하게 하고 지난 3일부터 요코하마항에서 해상 검역을 진행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355명의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이 크루즈선에서의 환자 수 증가는 지금도 '진행형'이지만 일본 내에서는 사실상 '강 건너의 불'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일본 정부가 취한 크루즈선 승객들의 해상격리 조치가 코로나19의 국내 유입을 막는 데 유효한 수단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선내 감염자를 급격하게 늘린 일본 당국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해상격리 조치에 대해서도 일본 내에선 비판 여론이 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3일 수도권인 가나가와(神奈川)현 거주 80대 일본인 여성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처음 사망하고,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여러 경로를 통해 감염된 사람이 일본 열도 곳곳에서 확인되면서 공포감이 높아지고 있다.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승선자(감염자 355명)와 중국 우한(武漢)에서 전세기편으로 귀국한 일본인(13명), 중국인 여행자(12명), 검역관·지자체 직원(2명) 등 당국이 검역 표적으로 삼았던 경로에서 발생한 환자를 제외하고 일본인 코로나19 감염자(32명)가 나온 곳은 16일 현재 수도 도쿄를 포함해 광역단체(전체 47개) 기준으로 11곳에 달한다.
지역 범위로는 최북단의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최남단인 오키나와(沖繩)까지 걸쳐 있어 사실상 일본 열도 전역의 방역망이 뚫렸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 됐다.
특히 일본 당국이 대형 크루즈선 검역에 전력을 기울이는 사이에 도쿄 하천을 누비는 소형 유람선인 '야카타부네'(屋形船)를 매개로 한 감염이 퍼진 것으로 확인돼 놀라움이 더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도쿄의 한 개인택시조합이 지난달 18일 야카타부네를 빌려 조합원과 가족 등 80명 규모로 개최한 선상 신년회의 참가자들 가운데 11명이 감염된 것으로 발표됐다.
코로나19에 걸린 야카타부네 종업원 중 1명이 신년회가 열리기 전인 지난달 15∼16일 중국 후베이(湖北)에서 온 여행객을 접촉한 것이 집단 감염의 단초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주말 동안 전개된 이런 상황은 17일 출근길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지하철 내의 출근길 승객을 살펴보니 한 구역에 앉은 7명 중 4명꼴로 마스크를 쓰는 등 마스크 착용자가 절반을 넘어 이전보다 많은 듯했다.
승객들은 전동차 소음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변에서 '콜록'대는 기침 소리가 나면 그쪽을 향해 일제히 시선을 돌리면서 경계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손잡이를 매개로 한 감염 가능성을 우려해서인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는 승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직장인들이 출퇴근길에 필요한 물품을 사는 곳으로 많이 이용하는 편의점에서는 마스크가 역시나 품절 상태였다.
도쿄 미나토(港)구 히가시신바시에 있는 시오도메 미디어센터 내의 훼미리마트 직원은 '언제 마스크를 살 수 있느냐'고 묻자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 20대 여성 회사원은 "감염자 중에 택시 기사나 의사도 있다는 발표가 나온 뒤 나도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섭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60대 남자 회사원은 "도쿄에서 잇따라 환자가 생기면서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에 대한 긴장감이 커졌다"면서 "SNS 등에선 도쿄올림픽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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