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심화·긴축 피로감에 아르헨티나 다시 '좌향좌'
4년 전 親시장 선택했지만 실망감에 다시 좌파로 정권교체
칠레·에콰도르 시위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정책 한계 반영 평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4년 전 대선에서 12년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우파로 정권교체를 택했던 아르헨티나가 4년 만에 다시 좌회전했다.
4년 전에도, 지금도 선택의 이유는 '경제'와 '변화'였다.
27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에선 중도좌파연합 모두의전선의 후보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가 당선을 확정했다.
2015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이 우파 후보 마우리시우 마크리 대통령에게 정권을 내준 지 4년 만에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한때 농업 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부터 누적된 여러 문제로 오랜 경제 위기를 겪었다.
2001∼2002년 경제위기 심화 이후 2003년 집권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세금 인하, 임금 인상 등의 경기 부양책을 폈고 이것이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리며 아르헨티나 경제는 빠르게 회복했다.
덕분에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퇴임 때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고 바통을 이어받은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도 연임에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12년간의 이들 부부 대통령 시절 후반기 아르헨티나 경제는 다시 힘을 잃었다.
물가가 치솟고 빈곤율은 다시 높아졌으며 경제 성장도 둔화했다. 무리한 포퓰리즘과 시장개입주의 정책이 경제를 병들게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기에 정권의 부정부패 의혹도 잇따르면서 4년 전 대선에서 아르헨티나는 우파 정권을 탄생시켰다.
유명한 기업인의 아들이자 명문 축구클럽 보카 주니어스의 구단주였던 마크리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 기대감을 안고 예상 밖 승리를 거뒀다.
마크리 대통령의 당선은 중남미 '핑크 타이드'(Pink Tide·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 퇴조를 알리는 중요한 변곡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출범한 마크리 정권 4년 동안에도 아르헨티나 경제는 살아나지 못했다.
빈곤율은 35%까지 치솟았고, 올해 물가 상승률은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페소화 가치는 지난해 초 이후 70%가량 떨어졌다. 세계은행은 올해 아르헨티나 경제가 3.1%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560억 달러(약 65조8천억원)의 금융 지원을 받게 됐다.
물가 상승과 페소화 가치 하락에 가뜩이나 삶이 팍팍해진 국민들 사이에서 마크리 정부의 긴축 정책에 대한 불만도 쌓여 갔다.
지난 8월 예비선거에서 예상 밖 큰 패배에 충격을 받은 마크리 대통령은 국민들에 무리한 긴축을 강요한 것을 반성하면서 감세와 임금 인상 등의 조치를 내놓았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진 못했다.
결국 4년 전 마크리 대통령에게 향했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변했고, 우파 정권은 4년 만에 다시 자리를 내주게 됐다.
아르헨티나의 이번 대선 결과는 칠레, 에콰도르의 최근 반(反)정부 시위와 맞물려서도 시사점이 크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친시장주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펴왔고, 좌파 후보로 당선됐던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도 취임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이전 정권과의 결별을 선언한 바 있다.
각각 지하철 요금 인상과 유류 보조금 폐지로 촉발된 두 나라의 시위는 사회 불평등과 저소득층의 박탈감을 헤아리지 못한 채 무리하게 긴축정책을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위기를 보여줬다.
칠레와 에콰도르의 거리에서 쏟아져 나온 민심이 아르헨티나에서는 표로 확인된 셈이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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