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독재자 프랑코 유해 이장하나?…대법원 24일 판결
내전 희생자 위한 국립묘역에 자리잡아…민주화 이후 논란 이어져
"고통스러운 역사 들추는 행위" vs "독재자 묘 유지에 공금 안 돼"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스페인의 민주화 이후 끊임없이 정치·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돼온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의 유해 이장 문제가 24일(현지시간)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스페인 대법원은 이날 수도 마드리드 인근 국립묘역인 '전몰자의 계곡'에 안장된 프랑코의 유해를 발굴해 이장하는 문제에 관해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2일 보도했다.
1975년 사망한 프랑코는 이 묘역 내 거대한 바실리카 양식의 화강암 구조물로 된 특별묘역에 묻혀 있다. 이곳에는 1936~1939년 내전 당시 서로 반대쪽에 섰다가 사망한 3만 명 이상도 함께 묻혀 있다.
스페인 정부는 애초 지난 6월 프랑코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려 했지만, 발굴 수일 전 대법원이 프랑코의 후손들이 낸 집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현 집권당인 사회노동당(PSOE·중도좌파) 정부는 150m 높이의 세계 최대 규모의 십자가가 설치된 이 묘역이 내전 희생자보다는 승리자들을 미화하는 프랑코 정권에 대한 기념비라는 입장이다.
사회노동당 측은 2017년 프랑코의 유해를 이장하는 내용의 발의안을 표결에 부쳐 350명의 의원 중 198명의 지지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보수성향의 국민당은 구속력 없는 이 발의안을 외면했으며, 프랑코의 통치 행태에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프랑코의 유해를 이장하려는 시도들을 줄곧 막아왔다.
결국 지난해 6월 집권에 성공한 사회노동당은 프랑코 유해 이장을 최우선 정책의 하나로 정하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사회노동당 소속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당시 의회에서 "오랜 세월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며 상처를 완전히 봉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프랑코의 가족들과 추종자들은 유해를 이장하려는 행위가 고통스러운 역사를 다시 들추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프랑코의 유산을 기리는 단체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재단' 측은 대법원이 유해 이장을 승인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면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유해를 발굴해야 할 경우 마드리드 인근 시립묘지 내 프랑코 부인 묘 옆에 묻자는 의견도 있지만, 프랑코 가족은 시민들의 접근이 쉬운 마드리드 중심부 알무데나 대성당의 지하 가족묘에 매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전 중 집단매장된 이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펴는 단체인 '역사적 기억 복원 협회'(ARMH)는 프랑코가 현재 매장된 곳에서 떠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단체의 에밀리오 실바는 "독재자 무덤을 유지하기 위해 공금을 쓰는 국가를 민주적이랄 수는 없다"며 "이는 독재정권의 책임을 면해 준다는 것을 은연중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코는 1936년 총선을 통해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자 쿠데타를 일으켰고 3년간 이어진 내전에서 승리한 뒤 일당 독재국가를 수립했다. 그는 1975년 사망 직전까지 집권했다.
한편 스페인은 오는 11월 10일 6개월 만에 다시 총선을 치를 예정이어서 이번 대법원의 결정이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난 4월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은 하원 350석 중 123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으나, 새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에 실패해 새로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cool21@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