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쟁' 외친 검찰총장 취임사에 공정위 "무슨 뜻?"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공정경쟁을 꺼내 들자 경제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공정위가 담합과 하도급 갑질, 일감 몰아주기 등 시장의 공정경쟁 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를 제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검찰총장이 다름 아닌 공정경쟁을 화두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전속고발권 중 일부를 폐지해 검찰이 바로 수사하게 하는 방안이 추진 중인 시점이어서 공정위로선 더욱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29일 "윤 총장이 취임식 때 공정경쟁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언급한 내용을 찾아봤다"며 "공정경쟁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은 것 같기는 한데, 정확한 의중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윤 총장이 경제 사건, 그중에서도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며 "공정거래법 관련 범죄 중 카르텔 수사를 강화할 것 같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25일 취임한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형사 법 집행의 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모든 이에게 풍요와 희망을 선사해야 할 시장기구가 경제적 강자의 농단에 의해 건강과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헌법체제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대검찰청은 설명자료를 내고서 "신임 총장은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왔다고 믿고 있고, 시장경제의 성공조건으로 '공정한 경쟁'이라는 룰을 매우 중시하고 이 룰을 위반하는 반칙행위는 묵과할 수 없다는 투철한 신념을 갖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공정위 공무원들이 검찰총장 취임사에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런 내용이 공정거래위원장의 취임사에 주로 언급될만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 공정거래법 전속고발권 부분 폐지가 추진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고발을 공정위만 할 수 있게 하고 검찰도 공정위가 고발한 이후에 수사에 들어가게 하는 제도로, 정부는 작년 11월 가격담합·공급제한·입찰담합 등 경성(硬性) 담합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 청와대 정책실장인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검찰과 공정위의 중복 조사 및 수사 우려에 대해 3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경성담합 중 입찰담합에 관한 리니언시 사건, 공소시효가 1년 안 남은 사건은 검찰이 우선 수사하고 나머지는 공정위가 먼저 조사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구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윤 총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될 때부터 공정위 내부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이나 공정거래법 관련 수사에 변수가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 기존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공정거래조사부와 조세범죄조사부로 분리하는 등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 수사 역량을 강화한 바 있다.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언제 통과될지 요원한 상황이지만, 대검찰청은 전속고발권 부분 폐지를 염두에 두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수사를 지원할 조직을 반부패강력부 산하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지 않아도 검찰은 담합 등에 대한 수사에 바로 착수할 수 있다. 형법이나 건설산업기본법 등 공정거래법 외 다른 법에도 입찰방해죄 등 죄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차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언급되면서 공정위 내부가 술렁이기도 했다.
사실 공정위와 검찰은 오랫동안 긴장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검찰이 모든 분야에서 법 집행을 주도하려 했지만 경제 사안은 정밀한 경제분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공정위가 전속고발제를 지켜왔다.
앞선 검찰의 공정위 출신에 대한 재취업 비리 수사에 대해서도 공정위 내부에선 '무리한 수사', '전속고발권 폐지를 위한 수사'라는 불만이 많았다.
최근 서울고법은 공정위 재취업 비리 사건 항소심에서 기소된 공정위 전·현 최고위직 6명 중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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