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북상] ②산불 석 달 "어느 세월에 산사태 막나" 불안 커
부랴부랴 마대 쌓고 수로 냈지만, 이달 안 축대벽 쌓기는 불가능
주민들 "비 100㎜ 오면 다 쓸려가…그래도 버텨야지 어쩌나" 걱정
(고성·속초=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빨리빨리 해야지. 안 그러면 저거 싹 쓸려나가지…"
지난 4월 덮친 화마(火魔)에 잿더미가 된 숲은 나무 밑동과 잔가지만 남은 채 벌거벗었다.
잿더미가 된 숲에서도 초록빛 새 생명이 돋아났지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장마전선 북상을 앞둔 26일 연합뉴스 취재진이 찾은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인흥3리 마을은 산불이 휩쓸고 간지 어느덧 석 달이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산사태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인흥3리는 야산 대부분이 해발 100m 안팎으로 높진 않지만, 민가와 야산이 거의 맞닿은 탓에 산사태 응급복구 대상 1순위로 꼽힌 곳이다.
마을 토박이 이석봉(79)씨는 "작업을 위에서부터 하는데 어느 세월에 저걸 끝내. 저거 100㎜만 와도 훅 쓸려 내려가"라며 혀를 끌끌 찼다.
이씨 말처럼 산사태 응급복구는 정작 민가와 등을 맞대고 있던 비탈면이 아닌, 정상 부근에서 한창이었다.
정작 주민들이 가장 걱정스레 바라보는 곳에는 보강토블록 계획선을 표시해둔 빨간색 깃발만 꽂혀 있을 뿐이었다.
산불에 타버린 옆집과 그 옆집이 철거되면서 산비탈 앞에는 윤모(56)씨 집만이 홀로 남았다.
산불 발생 직후 연수원에서 지내다 원래 보금자리로 돌아왔지만, 푸석해진 흙은 힘없이 흘러내리고 식물은 그 뿌리를 드러내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윤씨의 집을 위협하고 있다.
"버틸 때까지 버텨야죠. 벌써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어요. 경계측량을 해야 축대를 쌓든 뭐라도 시작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공사하더라도 먼지를 다 마셔야 할 상황이예요."
이미 자포자기한 듯 윤씨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이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2002년 9월 태풍 '루사'로 이웃 1명을 잃은 아픔이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응급복구가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우기 전 응급복구를 끝내려는 인부 마음도 급하긴 마찬가지지만, 주민들 눈에는 더디게만 느껴질 뿐이다.
현재 인흥3리 지역에는 산불피해 나무 벌채를 끝내고 녹화 마대와 풀을 이용한 사면 정비와 수로 만들기 작업이 한창이다.
인부 20∼30여 명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마대를 쌓거나 풀을 심고, 굴착기까지 투입해 수로를 파고 있으나 이번 장마 전까지 응급복구를 끝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축대벽을 쌓기 전 단계인 마대 쌓기와 수로 내기 작업까지라도 끝나야 물흐름이 원활해져 토사 유출 걱정을 덜 수 있지만, 이 작업마저도 언제까지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지자체 입장에서는 땅 소유주가 여럿인 경우 모두의 허락 없이는 작업이 불가능한 데다, 피해산림 소유주와 산림 아래 땅 소유주 간 이견을 보이면서 작업이 지체되는 일 등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어려움도 있는 게 사실이다.
고성군 관계자는 "위쪽 토사가 내려오지 않게 잘 막으면, 아래쪽은 토사 유출 위험이 크지 않다"며 "현재 인흥3리는 70%가량 작업이 진행됐고, 축대벽 공사까지 하면 7월 10일 전까지는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성과 함께 산불피해가 컸던 속초 장천마을은 인흥3리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마을 입구부터 축사와 민가 뒤편까지 산사태가 우려되는 대부분 지역에 마대 쌓기와 수로 내기 작업을 끝내고 축대벽 쌓기 작업만을 남겨두고 있다.
높은 산이 없다는 점은 위안거리지만, 작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주민들 마음은 매한가지다.
주민 김모(62)씨는 "다행히 급한 곳은 일차적으로 메워놔서 안심되지만, 장마 전까지 복구를 다 끝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강원도에 따르면 27일 현재까지 동해안 지역 응급복구 평균 공정률은 고성, 강릉, 동해가 60%, 속초가 4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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